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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세율 인하가 무슨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가

인플레이션 억제에 법인세 인하가 효과적? 무지 드러낸 윤석열 정부의 감세정책

등록 2022.06.18 11:30수정 2022.06.22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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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것으로, 이 교수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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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 기업성장센터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발표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의 성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으나, 지금까지 나온 정보를 종합해 평가해 본다면 대체로 신자유주의 정책의 아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감세정책을 마치 만능의 약처럼 선전하는 것을 보면 그런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듭니다. 감세정책이야 말로 우리가 보아 왔던 신자유주의자들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법인세율 인하가 투자를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그들의 믿음은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궁금하기만 합니다. 그들이 재정학 전공자인 나도 모르는 어떤 이론적 근거를 갖고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아니면 법인세율 인하가 투자의 획기적 증가를 가져온 어떤 구체적 사례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하는 걸까요?

한 마디로 말해 법인세율 인하가 투자의 획기적 증가를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은 신자유주의자들이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합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만들어낸 허구

내가 쓴 <재정학> 책은 648페이지에서 652페이지에 걸쳐 조세가 기업의 투자행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지금까지의 이론적 연구 결과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이론적 연구의 결과를 보면 조세가 투자행위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작다는 결론을 내고 있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법인세율의 인하가 투자의 증가에 크게 기여했다는 연구 결과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뿐더러, 투자세액공제제도라든가 가속상각제도 같은 적극적인 투자유인의 제공도 이렇다 할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연구 결과가 대부분입니다.


시카고대학의 굴즈비(A. Goolsbee) 교수는 법인세상의 투자유인 제공이 투자촉진 효과는 별로 내지 못하면서 (세수 감소 같은) 비용이 많이 드는 비효율적 정책이라는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조세가 기업의 투자행위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은 조세 이외의 다른 요인들이 투자행위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보면 투자의 결정과정에서 조세 이외의 많은 요인들이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단지 투자행위에 제공되는 조세상의 특혜만을 보고 투자를 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말입니다.

조세가 투자행위에 대해 미치는 영향이 별로 크지 않다는 이론적 측면에서의 평가는 거의 컨센서스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적 감세정책을 실제로 실험해 본 결과 역시 투자 촉진에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내가 쓴 <미국의 신자유주의 실험>이란 책의 제5장이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신자유주의자들이 즐겨 부르짖던 '감세정책의 기적'은 완전한 허구였음을 밝히는 여러 연구 결과들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감세정책의 실패 사례를 찾아보자면, 2008년 MB정부가 법인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춘 일을 들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감세정책의 결과 투자가 획기적으로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는 이제껏 본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그 감세정책이 우리 경제에 어떤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는 것을 느껴보신 적이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경제학에 대한 무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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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경제정책방향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부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발언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1차관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감세론자의 주장 중 더욱 황당한 것은 법인세율 인하가 인플레이션 억제에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거라는 겁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의 경제단체들이 법인세율을 낮춰주면 기업 비용이 절감되어 생산과 공급이 늘어나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신문 보도를 보니 전직 기재부장관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그와 비슷한 얘기가 나왔다고 하고요.

만약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경제학 교과서를 바꿔 써야 할 정도로 획기적인 상황의 변화가 생긴 셈입니다. 전통적인 케인즈경제학의 입장에서 보면 감세정책은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반면에 물가를 불안하게 만드는 효과도 냅니다. 어떤 정책을 통해 경기가 활성화되면서 물가도 안정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정책은 현실에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감세정책은 물론 그들 중 하나가 결코 아니고요.

법인세율 인하가 기업 비용의 절감을 가져와 생산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은 경제학에 대한 무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좋은 예입니다. 법인세는 수입에서 비용을 빼서 계산되는 이윤에 부과되는 세금으로서 비용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법인세율 인하가 비용 절감을 가져온다는 주장은 이와 같은 법인세의 성격을 전혀 모르는 무지에서 나오는 허황된 주장일 뿐입니다.

그리고 법인세 감면이 생산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 역시 경제학의 기본을 모르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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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이준구

 
위 그림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이 그림은 기업의 상품 생산량과 이윤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개의 곡선 중 검은색으로 표시한 위쪽의 곡선은 법인세가 부과되지 않는 경우의 생산량과 이윤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림을 보면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은 이윤이 가장 커지는 생산수준 Q*를 선택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30%의 법인세가 부과된다면 생산량과 이윤 사이의 관계는 아래쪽 붉은색으로 표시한 곡선으로 바뀝니다. 이 두 곡선의 높이를 비교해 보면 아래쪽 곡선이 위쪽 곡선의 70% 수준에 있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30%의 법인세를 내고난 나머지 세후 순이윤은 원래의 70% 수준일 테니까요.

단지 높이만 70% 수준으로 줄어들 뿐 곡선의 모양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그림을 보면 30%의 법인세가 부과된 후 이윤이 극대화되는 생산량은 여전히 Q*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윤에 법인세가 부과된다고 해서 기업이 생산량을 변화시킬 하등의 이유가 없다라는 말입니다.

만약 법인세율을 20%로 인하한다면 세후 이윤을 나타내는 곡선은 10%의 폭만큼 위로 이동해 붉은색 점선으로 표시된 곡선이 될 뿐, 곡선의 모양은 그대로 유지될 것입니다. 이 경우에도 이윤이 극대화되는 생산량은 여전히 Q*로서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요.

결론적으로 말해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이 선택하는 상품 생산량은 법인세가 부과되든 부과되지 않든, 또한 법인세율이 높든 낮든 간에 언제나 일정한 수준에서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법인세율을 낮추면 생산량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은 아무런 이론적 근거를 갖지 못하는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감세론자들이 과연 어떤 근거에서 법인세율 인하가 생산 증가를 가져와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우리 사회에 판치는 허황된 주장들

우리 사회에는 이렇게 아무 이론적 근거도 없는 허황된 주장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소위 경제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조차 그런 주장들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정책이 이런 허황된 주장에 흔들린다면 그 귀결은 구태여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내가 알기로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기재부 관리들은 행시 출신이 많고, 행시에서 재정학은 필수과목 중 하나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지적한 것들은 모두 재정학 교과서에 나올 정도의 기본상식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그들이 배운 재정학 이론과 어긋나는 감세론자의 주장에 대해 그들이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자못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법인세 #윤석열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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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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