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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이 된 가슴 속 감정을 풀어내는 법

[나는 ADHD 노동자입니다] '이런 얘길 써도 될까?' 고민될수록 더 써야합니다

등록 2022.06.30 05:49수정 2022.06.30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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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어딘가 남과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서른에야 ADHD라는 병을 처음 알았고, 서른여덟에 성인 ADHD 확진을 받았습니다. 실체를 모르는 병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사람들 각자가 품고 사는 보이지 않는 아픔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많은 아르바이트와 직장을 거친 후 자신에게 맞는 생활을 찾은 지금, 저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보이지 않는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분들의 삶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손을 흔들어 봅니다. [기자말]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생활문을 써 오라고 하셨다. 주제는 '즐거운 우리 집'. 어, 어떡하지. 쓸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화목하고 조화로운 상황이 떠오르질 않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선생님께 받고 있는 신뢰를 잃기는 싫었다.

10살 인생 최대의 난관. 나는 고민 끝에 이야기를 지어낸다. 누군가 잘못 쓴 칫솔 하나를 놓고 식구 전체가 "내가 그랬어", "아니야, 내가 그랬어"라고 다퉜다는, 아름답고 아무도 안 믿을 이야기였다.


선생님께 불려갔다. 이거 지어서 썼지? 아니에요. 정말 이런 일 있었어요. 다음날, 엄마가 나를 불렀다. 왜 거짓말로 썼어? 아니야. 진짜로 전에 그런 적 있어. 아빠와 오빠가 와서 그런 일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황당해하는 식구들 얼굴을 보면서도 나는 정말 끝까지 우겼다. 그 뒤로 선생님은 글쓰기대회에 나를 부르지 않으셨다.

처음부터 쓰기 어려운 주제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빠르게 이런 판단이 진행됐다. '집은 즐거워야 하는 곳이다 → 우리 집은 즐겁지 않다. 고로 잘못된 집이다 → 잘못된 얘긴 하면 안 된다' 세상에는 환영받기 어려운 것, 잘 감춰져야 하는 것들이 있음을 알았던 것 같다.

'이런 얘길 써도 될까?'하는 의심은 요즘도 정말 많이 한다. 자기 얘기를 쓴다는 건 끝없는 개헤엄 같다. 정답이 없는 글쓰기에 정답이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못해 허우적대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에 남의 기준을 갖다 대면서 허우적댄다. 그러나 언제나 생각 끝에 이르는 곳은 이런 의심들이 나를 '표현하지 못하는 존재'로 만들어왔다는 점이다.

아직 충분히 세상에 나오지 않은 말들일수록 망설여진다. 그래서 더 꺼내야 한다. 망설여지는 이야기라는 건, 그만큼 그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숨어 있다는 뜻일 테니까.

좀 풀고 살아


홍승은 작가는 책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에서 "말하는 고통보다 말하지 않는 고통이 클 때 사람은 말하게 된다"고 썼다. 그렇게 '살려고' 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나도 언제부턴가 담아 두는 게 어렵다. 내 마음의 그릇은 물 한 방울 더 눌러 담을 수 없게 꽉 차 있어서 이제는 말로든, 글로든, 몸짓으로든 꺼내야만 한다.

나를 표현하지 못하고 산 요인은 다양하다. 사람들의 기대에 민감한 기질도 있고, 내 의견과 상관없이 언제나 정답이 정해져 있었던 성장 환경의 영향도 크다. ADHD와 관련해 생긴 자기 의심, 비주류적 성적 지향, 감정을 잘 감춰야 하는 강사 일을 오래 한 것도 진심을 외면하는 습관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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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검열 우리에게는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할 기회가 필요하다. 은유 작가는 책 <쓰기의 말들>에서 이렇게 썼다. "슬픔이 노폐물처럼 쌓여 갈 때 인간의 슬픔을 말하는 책은 좋은 자극제다. 슬픔을 '말하는 법'을 배우고 슬픔을 '말해도 괜찮다'는 용기를 준다. 슬픈 책을 읽고 슬픈 일을 꺼내 슬픈 글로 쓰면 슬픈 채로 산다. 살아갈 수 있다." ⓒ freepik

  
여기저기 아프면서 알았다. 쌓인 감정을 혼자서 잘 흘려보내는 기술조차 없었다는 것. 그게 티가 나는지 상사들이 종종 충고했다.

"사람이 좀 풀면서 살아야지. 난 집에 가서 혼자 욕이라도 하는데."
"승원씨도 좀 풀고 살어. 막 하면서."


그 말을 한 상사들이 가장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드는 분들이었다는 건 아이러니지만, 맞는 말이었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욕할 생각도 못해 봤고 한바탕 울지도 못했다. 기분은 나쁜데 상대의 입장이 금세 이해가 돼 버리니 맘먹고 미워하거나 탓을 하지도 못한다. 썩 착하지도 않으면서 답답한 노릇이다.

그러다 보니 직장생활을 할 때는 자려고 누웠다가 벌떡 일어나 가슴을 치는 밤이 많았고, 낮에는 열이 가슴 위쪽으로 뜨는 상기증 때문에 더 멍해지곤 했다. 그런 화병이 그대로 굳어 지금은 화석이 된 것 같다.

요즘 들어선 혼자서 하는 쌍욕이 얼마나 정신건강에 좋은지 느끼고 적극 활용 중이다. 잘 울고 그만큼 잘 털어버리는 애인을 보며, 울고 싶을 땐 마음 놓고 '정화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하다못해 지나가는 오토바이 굉음에 맞춰 소리라도 꽥 지른다.

표현. 지금 나의 화두는 진정 그것이다. 말이나 글로 제대로 표현하는 데는 번번이 실패하지만, 어떻게든 언어를 빚어서 몸 밖으로 밀어내려 한다. 내 존재를 뚜렷한 선으로 그려나가는 기분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
 

한 청년단체의 행사로 심리극에 참여했을 때, 내가 맡은 역할은 '웅크린 마음'이었다. 바닥에 웅크린 나를 다른 참여자들이 이리저리 밀며 손가락질했다. 그리고 나는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점점 크게 외쳤다. "웅크리지 않아!"

주인공 참여자를 돕기 위해 맡은 역할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언제나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그 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외치고 싶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반복했다. "웅크리지 않아!" 장풍으로 돌을 하나하나 쪼개는 기분으로 외쳤고, 외칠수록 슈퍼파워가 흘러들어오는 듯했다. 정말이지 그런 후련함은 처음이었다. 그날 이후 적어도 그때 떠올린 순간들에 대해서는 훨씬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됐다.

내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도 비슷한 과정이었다. 인생에서 단역으로도 두기 싫던 치부와 흑역사에게 글에서는 주연, 조연을 맡겼다. 그것들이 만들어온 삶을 펼쳐놓고 들여다보면서 지금의 걸음걸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글은 취약한 다리 근육을 지탱해 원하는 곳으로 나아가게 하는 지팡이였다.

김영하 작가가 말했다. 모든 삶은 이야기와 같고, 이왕 머릿속에 이야기로 남는 삶이라면 지금까지의 삶을 자신에게 좋은 방향으로 편집할 수도 있다고.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과거에 머문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내면의 어둠을 소외시키지 않고 거듭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어둠을 자신의 일부로 통합한다.

뜨거운 돌처럼 어떻게 다룰지 모르던 감정들을 문장문장으로 식혀내며 들여다보니, 내 이야기는 비극이 아니었다. 열기를 식힐 기회가 없었고, 열기 때문에 과거는 실제보다 치명적으로 보였다. 식은 돌을 자꾸 주무르자 찐빵처럼 말랑해졌다. 반으로 갈라 그 안에 숨은 앙금 같은 걸 맛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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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힘 한 덩어리로 뭉친 고통을 분해해서 불특정다수에게 읽히는 글로 조립하는 게 그렇게 간단하진 않았다. 글이 사유를 앞선 느낌이 들어 공들여 쓴 글을 버리기도 했고, 잘 쓰고 싶은 마음 때문에 오히려 나다움을 잃기도 했고, 내가 만든 틀에 갇혀 어쩔 줄 모를 때도 많았다. 내가 쓴 글이 지금도 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글을 쓰면서 나는 훨씬 나에 가까워졌다. ⓒ freepik

 
사회는 개인이 상처를 티 나지 않게 소화해 내적·사회적 성장을 이루길 바라지만, 사람은 단순히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게 아니다. 사람은 상처를 몸밖으로 밀어내며 조금씩 나아진다. 삼킨 독을 조금씩 뱉어내면서, 이미 스며버린 독으로 아직 열병을 앓으면서 나아간다. 그 과정을 누군가 지켜봐주지 않더라도. 

그래서 사랑받는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표현하는 행위 그 자체다. 누구와도 다른 삶의 한 조각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한다는 것. 관계와 사회의 불완전함 속에서 지워진 자신의 고유성을 더듬어 찾는 것.

울음 같은 글을 써야 하는 시기가 있다. 기억을 마주하고 혼자만 볼 글을 쓰는 것만도 버거운 시기. 그리고 때로는 비공개로 쓴 수십 편의 글보다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그대로 담아낸 한 편의 글이 더 많은 치유를 주기도 하는 것 같다. 불완전한 자신을 세상에 선언하며 얻을 수 있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글을 쓰든, 글이 아닌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든, 우리는 자신에게 작은 멍석을 깔아줘야 한다.

극복하기가 아닌 표현하기

"슬퍼지면 어때요, 울어버리면 되지." 

길을 걷는데 술집에서 흘러나온 노랫말 한 구절이 딱 잘라낸 듯 귀에 꽂혔다. 이 말이 왜 신선하지? 서둘러 핸드폰에 받아적었다(1986년에 발매된 가수 장덕의 <님 떠난 후>라는 노래였다).

"울지 않을래요"였다면 귀에 안 들어왔을 거다. '운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도 익숙하다. 그런데 '슬퍼도 상관없어. 나한텐 울음이라는 해소법이 있으니까'라는 태도는 반전이 있었다. 노래 속 어린 여성 화자가 자신의 회복탄력성을 얕보는 사람들에게 현자처럼 건네는 말 같았다.

나에게 '슬퍼지면 어때요' 다음 말은 뭘까. 나는 계속 쓰기로 한다. 슬퍼지면 어떤가, 괜찮아질 때까지 글로 쓰고 또 쓰면 되지. 매번 의심하고 고민하며 써도 괜찮다. 나만 좋아하는 글이라도 좋다. 두 가지 다짐만 품고 쓰련다. 진실하게 쓰기. 읽히는 글을 쓴다면, 최대한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쓰기.

마음속에 화석을 품은 당신은 어떤 말로 빈칸을 채우고 있을까. 조금씩 뱉어내자. 낙서로든 막춤으로든 상담으로든. 한 번 두 번 씻어내고 헹궈내다 보면 그놈의 화병, 욕 말고 진짜 '꽃' 같은 마음 풍성하게 꽂힌 화병이 되지 않을까. 바람이지만 믿음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는 긴 글로 연재합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adhdworker)

* 다음주는 휴재하고 7월 13일에 게재합니다.
#성인ADHD #ADHD #글쓰기 #자기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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