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전집 출판사와 그림책 세 권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다. 막연했던 꿈이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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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제 나는 그 꿈을 이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얼마 전 한 전집 출판사와 그림책 세 권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다. 막연했던 꿈이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궁극이라고 여겼던 지점은 끝이 아니었다. 그곳에 서 보니 목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만 주며 계속 걸어가라고 동기를 부여하는 작은 이정표의 하나일 뿐이었다.
설렘, 기쁨은 잠시뿐, 다시 새벽마다 책상에 앉아 하얀 화면을 마주하며 어깨와 허리통증을 벗삼아 지난한 작업을 이어나간다. 계약이 되었다고 해서 마법처럼 필력과 창의력이 자동으로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다음 작품 제안이 도착하는 일도 없으니까 계속 쓸 수밖에 없다. 모든 게 원위치다. 궁극의 실상은 그런 것이었다.
끝이라고 여겼던 지점에서야 끝이 없는 성장의 계단 중 겨우 한 칸에 막 올랐다는 것을 알았고 동시에 깨달았다. 무의식중에 갖고 있었던 노력과 성공에 대한 나의 관념을. TV며 SNS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무시로 받아들였던 성공하는 사람들의 신화와 자기 계발 광고가 얼마나 큰 환상을 양산하고 있는지를.
요즘 글쓰기뿐만 아니라 다이어트, 자기 계발이나 재테크 분야 등 단기간에 성공과 부를 얻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광고를 자주 본다. 처음 그림책 글쓰기 강의를 들었을 때의 내가 떠오른다. 그때의 나도 무의식적으로 단기간에 결과를 바라는, 비법에 대한 잘못된 믿음과 스스로에 대한 객관적이지 못한 시각을 품고 있었다.
전문가들이 귀한 가르침을 전수했으니, 쓱쓱 써나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달랐다. 내가 간과한 것은 이 분야와 관련한 내 경험치나 능력이었다. 아무리 탁월한 고수들의 방법을 안들 그것을 소화하고 여과시켜 나만의 것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하루아침에 될 리 없지 않은가? 시간이 필요하다. 글쓰기는 특히 그렇다.
로스 뷰렉이 그리고 쓴 그림책 <참을성 없는 애벌레>에는 방정맞은 애벌레 하나가 나온다. 하루아침에 나비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고치 안에서 한참 있어야 하는 걸 알게 된 애벌레. 집중하고 기다리라는 주변의 조언에도 결국 참지 못하고 때 이른 탈출을 감행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채우지 못한 채 나비가 될 수 있을 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