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터프레스가 들어왔다. 레터프레스라는 인쇄기가 센터에 들어왔다. 트럭과 지게차를 동원하고 네 명이 달라붙어서야 겨우 들여올 수 있었다.
최대혁
30, 40년 전만 해도 활판 인쇄로 만든 책이 흔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글자의 오톨도톨한 윤곽이 느껴지기도 해, 글자를 새기기 위해 누른 프레스의 압박이 정보의 무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후 오프셋 인쇄가 주종을 이루면서 박물관에나 들어갈 것 같은 레터프레스가 요 몇 년 사이 소비자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개성 있는 색다른 인쇄물을 찾는 소비자의 취향과 금박 인쇄 등과 같이 특수공정을 가미해서 부가가치를 올리려는 인쇄인의 궁리가 맞아떨어진 덕이다. 소비자의 취향이 나날이 다양해질 것을 생각하면 레터프레스는 한동안 자신만의 독특한 입지를 굳혀나갈 것 같다.
레터프레스는 수억 원씩 하는 대형 인쇄기를 갖추지 못하는 인쇄소들에게 쏠쏠한 수입을 안겨주는 기특한 기계이기도 하지만, 일단 기계가 도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수익성이나 생산성보다도 박진감 넘치는 움직임에 중독되고 마는, 매력을 가진 기계이기도 하다.
지금 대다수 디지털 장비들이야 박스형의 외관에 모두 감춰져 있고, 상당수 센서와 프로그램을 통해 자동화돼 그 메커니즘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심지어는 고장이 나도 기계를 수리하기보다는 모듈화된 부품을 갈아 끼우는 방식이다. 하지만 레터프레스는 다르다. 마치 스팀펑크 장르물에서 나오는 증기 기관처럼 기계 자체의 역동성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기계의 심장인 1.25Kw 모터가 분당 1400회의 회전수로 돌면, 벨트에 연결된 캠이 회전 운동을 왕복 운동으로 바꿔준다. 제일 상단의 롤러가 잉크를 머금고 기계 팔에 달린 롤러에 잉크를 전해주면, 기계 팔은 동판이 붙은 면을 훑으면서 잉크를 고루 발라준다. 롤러가 자리를 비키면 급지대에서 종이를 문 기계팔이 바람개비처럼 두 팔을 회전하면서 종이를 차례로 프레스에 올려놓는다. 마지막으로 프레스가 동판과 밀착해 인쇄 공정 하나를 마친다.
서로 다른 기계 팔이 군더더기 없이 절도 있게 움직이면서 분당 기백 장씩 찍어내는 모습을 보면, 기계 자체에 생명이 있는 것 같다. 그것도 기계 홀로 동떨어진 생명체가 아니라 기계와 더불어 세월을 견딘 노동자들의 삶과 얽혀 있는, 흡사 노동자들의 분신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