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본사앞 농성장시민문화제를 진행하기 전 농성장 주변에서 피켓팅 진행
권미정
노동조합에 가입한 청년노동자들
이 세 명의 노동자를 호명한 건 농성장 거리가 가까워서가 아니다. 이들은 모두 노동조합에 가입한 청년노동자다. 실제로 파리바게뜨와 쿠팡 모두 청년노동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은 곳인데, 두 노동조합의 주요 요구는 휴식시간과 노동조합 활동 보장이다. 임종린, 최효, 정성용의 싸움에서 오늘날 저임금 불안정 노동으로 힘겹게 하루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현실을 떠올리는 게 어렵지 않다.
모두가 입을 모아 청년의 꿈을 응원하는 시대, 정부는 주식투자와 같은 투기열망을 꿈으로 포장할 뿐이다. 그러나 정말로 청년에게 필요한 건 정당한 땀의 대가를 지킬 수 있는 노동조합이다. 한국사회는 연일 노동조합에게 구시대적 존재라는 오명을 씌우기 위해 청년과 거리가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로 살아가는 청년에게 노동조합은 절실한 삶의 문제이다.
공교롭게도 SPC와 쿠팡은 MZ세대의 소비 트렌드를 잘 쫓는 기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특히 SPC는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ESG경영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겉모습만 보아서는 청년세대의 소비심리를 쫓으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청년세대의 지향과 맞닿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전히 노동조합은 청년세대와의 거리가 먼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보수언론들은 투쟁만 일삼는 노동조합은 청년세대에게 외면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청년세대의 소비심리를 겨냥해 수익을 올리는 기업들이, 동시에 청년노동자를 착취하고 노동조합할 권리를 탄압하는 양면적 모습에서 우리는 과연 누가 노동조합과 청년의 거리를 멀게 했는지 되물어야 한다. 청년과 노동조합의 거리가 먼 것이 아니라, 기업이 청년의 노조할 권리를 막고 있는 건 아닌가?
물론 최근 능력주의 담론이 부각되며, 일부 청년들 사이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일부'의 사례에 불과하다. 저임금 불안정 노동의 당사자들은 결국 노동조합을 통해 제 권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누구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하는가.
사회가 노동조합과 노동하는 청년의 존재를 지우고 있는 동안, 서울에서 가장 부유한 곳으로 꼽히는 한 가운데에서 이 세 명의 청년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농성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 싸움에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 위해 정직하게 땀을 흘리는 청년들의 꿈이 담겨 있다면 과장일까.
노동하는 청년의 존재가 지워지지 않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