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신라에서 당나라로, 다시마 로드의 시작

역사와 문화가 있는 다시마

등록 2023.03.22 13:50수정 2023.03.2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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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마의 길

육지에 실크로드가 있다면 바다에는 해상로드가 있었다. 실크로드는 고대 중국과 서역 각국 간에 비단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무역을 하면서 정치ㆍ경제ㆍ문화를 이어 준 교통로의 총칭이다.  중국 중원(中原) 지방에서 시작하여 중앙아시아 초원, 이란 고원을 지나 지중해 동안과 북안에 이르는 길이다.


바다에도 해삼, 담비, 다시마가 있어 해상로드가 만들어졌다. 당서의 발해전에는 발해 남쪽바다에 다시마가 있고 이것을 당나라에 수출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만기요람(1808년) 문헌에 따르면 다시마는 대구, 해삼, 홍합과 함께 명나라에 조공으로 바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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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일본로 발해와 일본의 무역길, 다시마,인삼,담비,목재 등을 수출입했다. ⓒ 환동해문명사 자료

 
특히 발해는 자국산의 다시마 뿐만 아니라 일본산 다시마의 중계 무역에도 활약하였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선사에서는 발해에서 일본과 교류 때 남경남해부는 신라로 가는 길목이었으며 다시마의 산지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일본서기는 아이누는 북으로 사할린에서 아무르강 상류, 남으로는 도호쿠북부에 걸쳐 배로 교역활동을 전개했다. 다시마는 북방에서 다량 유입되어 일본 곳곳 시장으로 들어갔다.

특히 일본 훗가이도 다시마는 불노불사의 약으로 알려져 중국에서 비싸게 팔렸다.
훗가이도에 가나자와를 거쳐 가고시마를 통해 중국으로 가는 다시마의 길이 만들어졌다.

그만큼 다시마는 해삼, 담비와 함께 바다의 보물로 인식되어 해상의 3대 중요한 교역상품중 하나였다. 문헌에 따르면 다시마는 720년부터 약 200년동안 모피, 꿀과 함께 일본에 수출하였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1429년(세종 11년)에는 명 황제의 요청에 따라 곤포 400근을 중국으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다시마 로드는 다시마의 주요 생산지인 일본, 신라로부터 다시마가 생산되지 않는 당나라로 운반하면서 다시마의 감칠맛을,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미각으로 대성시킨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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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에조치의 다시마채취(1800년대) 일본 홋가이도 다시마, 불노불사의 약으로 전해지며 중국에 수출 ⓒ 환동해문명사

 
다시마의 어원


다시마는 조선시대 지역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달랐는데, 전라도에서는 다사마(多士麻)라는 이름으로, 함경도에서는 곤포(昆布)란 이름으로 불렸다. 당서의 발해전에는 발해 남쪽바다에 다시마가 있고 이것을 당나라에 수출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797년에 만들어진 속일본기(續日本紀)에서는 선조 때부터 다시마(콘부)를 계속 헌상해 왔다고 나와 있으며, 이것이 다시마라는 말이 일본 문헌에 등장한 가장 오래된 예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280년 전의 일이다.

이전부터 다시마(昆布,콘부)는 광포(廣布)(히로메)라 불렸다. 광포(廣布)를 일본식으로 읽으면 '코우푸'가 되는데, 이것이 사투리 발음으로 되어 '콘부'로 변하였고 한자도 '곤포(昆布)'로 바뀌게 된 것은 12세기 말부터였다.

그리고 다른 해조들과 달리 다시마는 폭이 넓고, 길다란 모습이 경사스러움을 상징하고 축하하는 모임이나 잔치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던 듯하다.
'KOMBU'는 일본의 콘부(다시마)를 뜻하는 영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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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마와 물범의 동행 고래가 새끼를 낳고 상처를 치유했다고 전함 ⓒ 진재중

 
다시마, 다양한 식재료!

다른 민족들은 바다의 잡초라 여기며 거들떠 보지도 않던 해조류를 우리는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최초의 기록은 당나라 유서인 '초학기'에 등장한다. '고래가 새끼를 낳고 그 해조류로 상처를 치유하는 것을 보고 먹었다'는 것이다.

또한 신라에는 '해인'이라는 잠수를 전업으로 하는 집단이 있어 이들이 다시마를 따서 배 위에 건조시켜 저장용으로 만들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어 그 역사가 상당히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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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마 요리 국물을 포함,부각, 튀김, 등 다양한 식재료로 활용 ⓒ 진재중

 
다시마는 왕에서부터 민중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즐겨먹던 음식이었다. 궁중의 일상식이나 연회식의 소선(素膳)에 쓰였고, 중국 사신접대 때에도 '일상식'이나 '연회식'에도 귀한 음식으로 올려졌다.

'연회식'으로는 편증이나 숙편을 다시마로 만들어서 소선의 하나가 됐다. 반듯반듯하게 자른 다시마에 간장 등의 양념을 넣고 무르게 국물없이 바짝 졸여내어, 잣가루를 고물로 붇혀 상에 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대게 녹두녹말로 만든 국수와 한 조가 되어 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질 좋은 다시마를 물 행주로 닦아 부드럽게 한 다음 반듯하게 자른 후, 여기에 대구포, 광어포, 홍어포, 오징어포, 문어포, 적복포, 건치, 쇠고기포 등과 잣을 말아 싸 술안주로 진찬과 진연 등의 잔칫상에 올렸다고 한다.
      
감칠맛의 대명사!

단맛과 감칠맛이 섞인 다시마는 오랫동안 음식의 재료로 쓰이며 우리 음식문화의 바탕이 되었다. 일찌감치 그 맛의 성분을 규명한 일본은 다시마로 건강뿐 아니라,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일본음식은 전골이나 우동같은 국물요리에는 물론이고, 장아찌,조림같은 반찬류, 심지어 생선회를 숙성시키는데도 다시마를 활용한다. 이제는 비단 일식 요리사 외에도 세계적인 스타 셰프들이 음식 맛을 내는 베이스로 다시마를 활용하고 있다. 

다시마의 맛 성분을 최초로 과학적으로 규명한 사람이 바로 일본의 화학자 이케다 기쿠나에다. 두부전골을 먹다가 두부에 스며든 다시마 국물에 반하여 연구를 시작하여 글루탐산(MSG)을 알게 되었고, 이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짠맛, 단맛, 신맛, 쓴맛에 이은 제5의 맛 '우마미(감칠맛)'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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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마와 공존 해양생물의 보금자리요, 미래의 생명자원이다 ⓒ 진재중

 
자연의 어머니, 바다가 인류에게 준 최고의 보물, 다시마. 너무 보편적인 맛이라서 잊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마에는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었고 인류에게 건강과 맛을 선사했다. 그 문화와 역사가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 다시마에 역사를 담고 문화를 다시 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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