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4일 아침, 임순분 소성리 마을 부녀회장을 만나려고 근처 마늘밭으로 찾아갔다.
안건모
"정부에서 이거는 북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든 거다, 이랬을 때 롯데가 중국에서 막 그거 당할 때 그때 확실히 알게 됐거든요. (중국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을 내보내고 물건 안 사고 불매운동 벌이고, 중국 내에 있는 롯데가 전부 다 수난을 겪을 때 더 확실하게 알게 됐어요."
실생활에서 얻는 이런 통찰은 대학을 다녀도 배울 수 없다. 임순분 부녀회장은 초등학교만 나왔지만 이렇게 세상을 삶에서 배운다.
촛불집회가 다시 시작되면서 가장 어려운 건 농사지을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요즘에 새벽에 밭일 나가야 되는데 집회 참석하고 나면 일을 못 해요. 새벽에 일하고 낮에 쉬고 해야 되는데 새벽에 시원할 때는 싸우고, 그러면 일이 또…."
그래도 요즘은 '태극기부대'가 오지 않아 그나마 낫다. 코로나 이전에는 태극기부대가 끊임없이 와서 주민들을 괴롭혔다고 했다. 얼마나 시달렸는지 임순분 부녀회장은 김천 구미의 차병원에서 여섯 달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단다.
화, 수, 목요일은 마을회관 앞에서 길을 막고 기도회를 연다. 그러면 얼마 안 있어 경찰들이 할머니들이 앉아 있는 의자를 들어 옮긴다. 그걸 가마 탄다고 하는데 그러다가 다친 사람도 많다.
"전에는 할머님들이 그렇게 하셨어. 그런데 이제 제가 말려. 왜냐하면 (경찰이) 잡아 버리잖아. 여기(팔) 멍 들면 2주, 3주가 나와요. 할머니들은 지금 이렇게 세웠다가 안 잡아 주면, 턱 주저앉으면 허리 바로 나가. 그래서 내가 할머니들은 딱 시간 되면 무조건 모시고 나가시라고 해. 사드 투쟁하면서 제가 얼마나 다쳤냐 하면, 성주 군수한테 왜 사드를 소성리 갖다 놨는지 설명을 해라라고 만나러 가서 그 군청 직원들이 팔을 꺾었어. 이게 인대가 나가 버린 거라. 여기 기브스를 6개월 하고 있었어. 그다음에 (사드) 장비 들어간다고 할 때 그 앞을 막았지. 막았는데 팔십다섯 살 먹은 할매를 들길래 '할매 들면 안 된다' 하고 의자를 잡고 있는데 경찰이 번쩍 들어 뿌니까 이 손이 의자 사이에 낑기가 손이 꺾여 뿟다. 이번에는 오른손을 6개월 기브스했어. 그다음에 또 갑자기 수천 명 경찰이 오길래 무슨 뭐가 들어가는가 해서 놀래 가지고 주민들 뛰어가서 도로를 막았다. 막았는데 경찰이 내 양쪽 팔을 잡고 질질질질 끌데. 그러니까 여름이잖아. 이 옷이 이제 올라가 가지고 세멘에 등어리를 다 깔아 버렸어. 그래가 그날은 그때는 너무 많이 다쳐가 원광대병원에 일주일 입원해가 있었어."
그것뿐만이 아니다. 갈비뼈에 금이 가기도 했다. 사드 들어올 때는 경찰이 팔꿈치로 쳐서 윗니가 다 나가 버렸단다.
"깨니까 병원이데. 멀쩡하게 살아 있었던 이빨이 다 나가 버리더라고…."
유이분 씨가 옆에서 듣다가 "어떻게 해…." 하며 안타까워했다.
임순분 부녀회장은 손가락, 발가락이 뒤틀린 것도 보여 주면서 그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 세상에, 군홧발로 짓밟기도 했단다. 온몸이 이렇게 다쳐도 하소연할 데가 없고, 국방부와 경찰들의 죄를 물을 길이 없다. 오히려 걸핏하면 그들이 마을 사람들을 고발한다.
"국방부에서 고발을 해서 벌금 500만 원 받아 갖고 벌금 500만 원 내고. 그리고 또 지금 걸려가 있어요. 또 지금 검찰 조사 얼마 전에 받았어요. 집시법이 아니라 그걸 뭐라 그래, 일반교통방해로 들어갔고. 최근에 받고 있는 거는 할머니들하고 도로 막았다고, 들어가는 차량 막았다고. 실제로 내가 앞에 가서 안 막았어. 할머니들이 막았어. 근데 '니가 사주했다.' 원래 직함이 있으니까 그렇게 하는 거지."
평택 미군기지 세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식민지의 백성으로 살고 있다는 걸 이럴 때 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