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태 시인역풍에 정점을 찍다.
도서출판 신생
요즘 읽을 책을 읽다 보면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었어. 늘 읽던 책과는 다른 책을 읽으려고 시도하다가, 막상 읽으면 흥미를 잃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거든. 여러 분야의 책을 읽고 싶은데 책을 편식하는 게 고쳐지지 않았어.
무작정 새로운 분야의 책을 읽고 글을 써 보고 싶었어. 나의 의지가 아닌 누군가가 추천하는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추천서는 사실 널리고 널렸잖아. 그리고 추천서에서 고른 책을 읽다가 포기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
그래서 방법을 바꾸기로 했어. 부산의 작은 출판사에서 만들어내는 책을 읽고 그에 대한 글을 써 보면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의미 있는 일은 내겐 언제나 동력을 주니까. 그렇게 생소한 책을 읽고 글로 쓰면서 여태까지 손이 잘 가지 않던 분야에 관심을 두고, 읽고, 글로 남기는 것이 이런 재미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그래서 이번에 소개할 책은 도서출판 신생의 김용태 시조집 '역풍에 정점을 찍다'
야. '시조라고?' 당황스러웠고 아득했어. 마치 수영장 물에 들어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시조를 읽는다는 건 그렇게 멀리서 웅얼거리는, 그런 느낌이었어. 그래서 걱정이 좀 됐어.
'과연 내가 연세 많으신 어르신의, 시도 아닌 시조집을 읽고 쓸 말이 있을까?'
그런데, 아니었어. 읽는 동안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친근함'이 가득했거든. 여태까지 나에게 시조란 '어즈버 태평연월이...'로 기억되는 고어(古語)들의 집합체였는데, 이 시조집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발음 좋고 의미 있는 대사처럼 귀에도 쏙, 마음에도 쏙 들어왔어.
'꼰대라떼' 없는, 내공이 느껴지는 시조집
시인은 70년대 즈음부터 시조를 써 왔어. 그 긴 시간 동안 일궜을 내면의 깊이가 시어에서 느껴져. 책에는 그것들이 다섯 종류의 다른 듯 닮은 모습으로 녹아 있어. 시작은 '명상적, 불교적 상상력'으로, 때론 '삶의 의지와 대결 의식'으로, 어느 시절에는 '현실 비판과 풍자'를 하면서, 그러다가 '삶에 대한 성찰과 관조'를 이루며 마침내 '자연과 서정'을 노래하면서 말이야.
시조의 형식은 갖췄으나 올드하다고 느껴지지 않았어. 오히려 트렌디해 보이기까지 해. 그래서 짧은 시조들 속엔 '꼰대'도 '라떼'도 보이지 않았지. 꼰대는 온데간데없고 '유연함'이 남아 읽고 있던 내 마음도 그 부분에서 확 열렸고, 라떼가 자리 잡을 만한 곳에는 자기 단련만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어. 시인 내면의 힘이 정점을 찍었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