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주말마다 걷는 산책길주말 저녁이면 아들과 안양천에서 산책을 한다. 걸으며 삶의 고민도 함께 나눈다.
신재호
저 멀리에서 가방을 메고 땅을 쳐다보고 있는 아들이 보였다. 금방 눈을 마주쳤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푹 안아주었다. 가기 전엔 크게 혼을 낼까도 생각했지만, 막상 만나고 하니 안전하게 있는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검은색 상의에 하얀 얼룩이 보였다.
밖에 있는 동안 무얼 했냐고 물으니 계속 걸었다고 했다. 오후부터 밤까지 걸었으니 흘린 땀이 말라서 하얀 표식을 만들었던 것이었다. 걸으니 생각이 정리되고 좋았다는 말에 마음이 짠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공부하라고 계속 밀어붙이기만 했던 요즘이 미안했다.
저녁도 먹지 못했다고 배가 고프다고 해서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과 음료수를 샀다. 집에 들어와 늦은 저녁을 챙겨주었다. 아내는 아직 화가 덜 풀린 듯 보였지만, 눈동자에 걱정이 한가득 서려 있었다. 아내와 잠시 안방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의 돌발 행동을 가볍게 넘길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공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보듬어주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내 역시도 같은 생각이었다.
자녀와의 소통은 먼 곳이 아닌 가까이에 있었다
막상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니 머릿속에 하얀 장막이 드리웠다. 소통할 요량으로 함께 게임도 해보고, 산에도 가보았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때 갑자기 떠오른 것이 바로 '축구'였다. 아들은 요즘 들어 축구 관련 유튜브 영상도 챙겨보고, 부쩍 관심을 드러냈다.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다 불쑥 말을 꺼냈다.
"이번에 토트넘 보니깐 콘테 감독이 신입 선수들을 영입 많이 하던데. 어떤 선수들인지 좀 알아?"
"아빠는 그것도 몰라. 우선 이브 비수마라고 작년에 브라이튼에서 뛴 미드필더인데 수비력이 장난이 아니야. 완전 진공청소기야. 그리고 히샬리송은 에버튼 공격수 출신인데 공격력이 엄청나. 여태껏 40골도 넘게 넣어서. 이뿐인 줄 알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선수 평에 언제 이렇게 알게 되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리곤 바로 이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도 인터넷으로 열심히 축구 정보를 습득하기 시작했다. 특히 아들이 좋아하는 프리미어리그를 집중하여 공부했다. 축구란 공통점이 생기니 멀어졌던 둘 사이가 금세 가까워졌다. 아들은 내가 있는 안방까지 찾아와 축구 이야기를 꺼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 역시도 공부에 관한 스트레스를 덜 주려 노력했다. 학원에도 부탁해서 과제도 줄이고, 늦게까지 남아서 공부하는 시간도 조정했다. 말 한마디도 따뜻하게 전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아내의 이런 노력이 빛을 발해 아들이 먼저 지난번 일에 관해서 진심으로 사과를 전했다.
생각해보니 소통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저 좋아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봐주는 그것만으로도 가능한 일이었다. 그동안 깨닫지 못하고 멀리서만 찾았다.
아들은 지난번 안양천에서 걸었던 것이 좋았는지, 주말에 꾸준히 걷겠다고 했다. 나도 평소에 걷는 것을 좋아하기에 함께 걸어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좋다고 했다. 그래서 2주 전부터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