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루 아래로 난 문 만세루 아래로 난 문을 통해 들어가면 계단을 오를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대웅전을 만날 수 있다.
김영래
천 년 고찰 봉정사를 처음 찾은 건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지지난해 깊은 겨울 어느 날 무채색 풍경이 침묵처럼 고요했던 때였다. 이번 여름 여정에 봉정사를 다시 넣었다.
잎 떨꾼 나목에 찬바람이 짙푸른 신록과 숨을 턱턱 막는 폭염으로 바뀌었을 뿐 일주문 앞 길은 여전히 고요한 침묵의 융단이 깔려 있었다. 종교라는 엄숙함의 자발적 작동에 의한 자의식에서 비롯된 분위기는 그물처럼 덮쳐오는 습한 더위와 뒤엉켜 더욱 가라앉았다.
잎에 부딪쳤다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이 차라리 좋으련만 했으나, 지난 며칠 세차게 내려 다치고 잃은 사람들이 많으니 세상에 나만 좋자고 비원 하는 염치가 여기서는 좀 아닌 듯해 생각마저 접었다.
처음 방문 때도 그랬듯이 만세루 기둥으로 다가가 살포시 안았다. 천 년을 견디며 세파에 파이고 닳아져 손에 닿는 거친 느낌이 전하는 사연과 그가 주는 위안과 평화가 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만세루 밑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영화의 오프닝처럼 대웅전이 모습을 차츰 드러낸다. 빗살무늬 마당엔 폭염이 장마처럼 쏟아지고 있어 그곳을 걸어 대웅전 앞으로 갈 만큼 나는 아직 불심이 깊지 않다. 햇살을 피해 만세루 마루에 걸터앉았다. 한 장면에 멈춰있는 영화가 재미있을 리 없건만 대웅전만 바라보는 한 장면이 아름다운 영화는 봉정사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오래 보고 있으니 감독의 디테일이 보인다. 코발트 빛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 떠있고, 용마루 뒤로 덥수룩한 푸른 머리의 소나무와 처마 밑 빛바랜 낡은 기둥, 문창살과 어두컴컴한 그림자 뒤로 근엄한 부처님과 돌계단, 디딤돌 위의 가지런한 신발과 이름 모를 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