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대선: 갈등과 합의의 역사가 만든 토양

케냐 대선의 역사와 그 의미

등록 2022.08.24 10:00수정 2022.09.2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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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의 민주주의

이달 초 동아프리카 케냐에서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 케냐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로 큰 경제규모를 가진 경제 대국이다. 가장 큰 경제규모를 가진 나이지리아가 서부 아프리카를, 두 번째로 큰 경제규모를 가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남부 아프리카를 대표한다면, 케냐는 동부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지역 패권국이다.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이 그렇듯 케냐 역시 오랜 기간의 독재를 겪은 나라다. 1964년 조모 케냐타가 초대 대통령에 오른 뒤 1978년 본인이 사망할 때까지 장기 집권했고, 그 뒤를 이은 대니얼 아랍 모이 역시 악명 높은 독재자였다.

케냐 아프리카 국민 연맹(KANU)이라는 정당을 기반으로 일당 독재를 펼치던 상황은 대니얼 아랍 모이의 집권 뒤에도 15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러나 케냐의 민주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압박은 점차 심해졌고, 국내에서도 일당제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결국 케냐는 1992년 다당제로 첫 선거를 치렀다.

오랜 기간 독재정에 신음한 많은 국가들은 다당제 전환 이후 큰 혼란을 겪는다. 혼란을 견디다 못해 다시 독재정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국경선 내 민족 간 분쟁이 심각한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것이 곧 내전으로 이어진다. 어떻게 생각하면 전형적인 형태다.

다행히도 케냐는 그 전형적인 형태를 따르지 않았다. 물론 당장 정권을 교체하진 못했다. 1992년 선거와 5년 뒤 1997년 선거에서도 현직인 대니얼 아랍 모이 후보가 모두 승리했다. 문제는 2002년이었다.

2002년 선거에서 대니얼 아랍 모이는 출마하지 못했다. 다당제 도입 이후 두 차례 대통령에 당선되었기 때문에, 3선제한에 걸린 것이다. 여당에서는 초대 대통령 조모 케냐타의 아들, 우후루 케냐타가 후보로 나섰다. 야당연합에서는 음와이 키바키 후보를 내세웠다. 음와이 키바키는 과거 대니얼 아랍 모이 정권에서 부통령까지 역임했지만, 다당제 도입 이후 야당에서 활동한 인사였다.

결국 2002년 선거에서 야당연합은 승리했다. 대니얼 아랍 모이는 정권을 야당에 승계했다. 주변 지역에서 흔히 벌어지는 선거 불복과 친위 쿠데타는 없었다. 음와이 키바키는 케냐의 세 번째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케냐 역사상 최초로 선거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였다.

선거와 역전

5년 뒤, 음와이 키바키는 아주 호의적인 상황에서 재선에 도전한다. 스스로가 현직 대통령이었고, 지난 선거에서 맞붙었던 우후루 케냐타도 음와이 키바키를 지지했다. 이전 선거의 양대 후보가 한 진영으로 모인 사건이었다.

반대편에서는 라일라 오딩가 후보가 출마했다. 과거 일당독재 시절부터 다당제 도입 운동으로 정치경력을 시작한 야당 지도자였다. 물론 키바키-케냐타의 연합에 비해 힘은 없었다. 초기 여론조사에서 오딩가 후보의 지지율은 10%대를 오갔고, 키바키의 재선은 확실시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달라졌다.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에너지는 오딩가 후보로 결집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키바키 후보는 그간 케냐 정치를 장악해 온 최대의 인구집단, 키쿠유 민족 출신이었다. 반면 오딩가 후보는 루오 민족 출신이었다. 선거는 여야의 대결을 뛰어넘어 민족 간의 자존심을 둔 대결로까지 확대되었다.

선거는 점차 접전 양상으로 변해갔다. 오딩가 후보 진영에서는 야당 세력을 응집한 역전승을 기대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현직 키바키 대통령이 46%, 오딩가 후보가 44%를 얻으며 키바키 대통령의 연임이 확정되었다. 기대에 부풀었던 오딩가 후보의 지지자들은 낙담했다.

낙담은 단순한 실망을 넘어선 정치적 에너지였다. 야당은 선거에 불복하며 지지자들의 행동을 촉구했다. 상황은 폭력적으로 흘러갔다. 2007년 케냐 정치위기의 시작이었다. 이듬해까지 1500여 명 이상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 폭력의 끝, 케냐 정치는 결국 합의를 도출했다. 야당 소속의 오딩가 후보를 여당에서 총리로 선임하는 일종의 연립정부가 수립되었다. 2010년에는 개헌을 통해 갈등을 봉합했다. 선거 후보자의 결정과 결과의 발표, 선거 조작 방지 등에 엄격한 케냐 헌법이 이렇게 탄생했다.

신헌법 아래 최초의 대선은 2013년에 치러졌다. 음와이 키바키 대통령은 3선제한에 걸려 출마하지 못했다. 여당에서는 지난 선거에서 음와이 키바키를 지지하며 여당에 합류한 우후루 케냐타가 후보로 선출되었다. 야당은 이번에도 라일라 오딩가 후보를 중심으로 뭉쳤다. 둘 모두 대선에 주요 후보로 출마한 적 있는 관록 있는 후보였다.

결과는 우후루 케냐타의 승리였다. 신헌법에 따라 50% 이상의 득표를 하지 못하면 결선투표를 진행해야 했지만, 1차 투표에서부터 케냐타 후보가 50.5%를 가져가며 당선됐다. 깔끔한 선거였다. 2017년에 치러진 다음 대선도 양상은 같았다. 재선에 도전하는 케냐타 대통령과, 야당의 오딩가 후보는 다시 한 번 맞붙었다. 오딩가 후보로서는 벌써 네 번째 대선 출마였다.

이번에도 케냐타 후보는 1차 투표에서 54%를 득표하며 결선투표 없이 당선되었다. 그러나 오딩가 후보 측에서는 여기에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투표 결과 집계와 고시 과정에서 부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케냐 대법원은 선거 문제에 엄격한 헌법에 따라, 이번 선거에 헌법에 위배되는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결정했다. 대선 결과가 법원 판결로 무효화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선거는 두 달 뒤 다시 치러졌다. 오딩가 후보는 자신이 지적한 문제가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다면서 선거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렇게 사실상 야당 없이 선거가 치러졌고, 케냐타 대통령은 98%의 압도적 득표로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일부 지역구에서는 소요로 인해 아예 투표가 치러지지 못했고, 합계 투표율은 40%도 되지 못했다.
 
2022년 대선


그리고 다시 5년이 지난 2022년. 대선을 앞둔 정치지형은 과거와 달라져 있었다. 케냐타 대통령과 오딩가 후보는 소위 "휴전 선언"을 통해 화해했다. 케냐의 전국적인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고 상호 협력을 약속했다. 3선제한에 걸린 케냐타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오딩가 후보를 지지했다. 다시 한 번, 지난 선거의 양대 후보가 한 진영에 결집하는 연대가 만들어졌다.

반대편에는 윌리엄 루토 후보가 출마했다. 케냐타 대통령과 함께 러닝메이트로 선거에 출마해 부통령이 된 인물이지만, 오딩가 후보와의 화해에 불만을 품고 탈당해 이번에는 야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다. 현직 대통령은 자신의 옛 정적을 지지하고, 현직 부통령은 야당 후보로 출마하는 놀라운 구도가 만들어졌다.

모두들 오딩가-케냐타 연합이 선거에서 크게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크게는 8%p까지 차이가 날 것이라고 보는 조사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55세의 윌리엄 루토 부통령은 50.5%의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오딩가 후보는 다섯 번째 고배를 마셨다.

오딩가 후보는 선거 결과 발표 이후 한동안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지난 22일 일부 지역에서 개표 조작이 있었으므로 선거 결과를 무효화해 달라는 청원을 대법원에 제출했다. 지난 선거와 같은 방식이다.

오딩가 후보가 다시 선거 불복을 선택하자 한쪽에서는 조롱의 목소리도 나왔다. BBC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선거에 불복했던 사람"이라거나, "오딩가 후보가 승리했다면 자신의 승리에 불복했을 것"이라는 온라인 상의 목소리를 소개하기도 했다.

오딩가와 케냐의 민주주의

그러나 오딩가 후보의 주장을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선거관리위원회 위원 7명 중 부위원장을 포함한 4명이 이번 선거가 투명하지 못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이들은 선거관리위원 전원의 의견 합의가 없었음에도 독단적으로 선거 결과를 발표한 위원장을 비판하며 선거 결과 집계에 문제가 있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현재까지도 케냐 선거관리위원회는 일부 지역구의 선거 결과를 공표하지 못한 상태다.

물론 이것이 선거 결과 자체를 무효로 할 수 있는 수준의 흠결인지는 더 검토해봐야 할 문제다. 해당 선거관리위원들은 위원장이 발표한 결과에서 각 후보가 얻은 표를 모두 더하면 개표율 100.01%가 나오는 오류가 발견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0.01%p의 차이로 선거 결과 전부를 무효화시킬 수 있을까.

무엇보다 5년 전 오딩가 후보는 현직 대통령과 맞붙은 야당 후보였다. 그러나 지금 행정권을 쥔 현직 대통령은 오딩가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선거 결과에 엄격한 헌법이라지만, 같은 후보의 주장으로 두 번이나 연속해 대선 결과를 무효화하는 정치적 부담을 대법원이 질 수 있는지도 미지수다.

그러나 한편으로 오딩가 후보의 불복 선언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말했듯 케냐는 오랜 기간의 독재를 겪은 나라다. 그 기반에서부터 차근차근 민주주의를 쌓아온 국가다. 그리고 그 도약의 순간에 언제나 오딩가 후보가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번 대선에서 케냐 선거관리위원회는 개표가 이루어지는 즉시 개표 내역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개표의 투명성을 강조하는 헌법이 있었고, 개표 문제로 대선 결과를 취소할 정도로 결단력 있는 대법원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케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선거를 지켜보는 주변국이 있었다. 우간다나 탄자니아 등 주변국에서도 케냐 선거의 투명성과 개표의 신속함을 차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크게 일었다. 앞으로 반 년여 동안 많은 아프리카 국가가 선거를 치른다. 24일 앙골라 총선을 시작으로 9월에는 차드와 상투메프린시페, 10월에는 레소토, 11월에는 말리, 내년 2월에는 나이지리아에서 선거가 치러진다. 이들 국가의 국민들이 이번 케냐 선거의 진행 과정을 주시하지 않을 리 없다.

그리고 이렇게 투명하고 엄격한 정치체제를 만들기까지, 오딩가 후보의 기여가 없었다고 할 수 없다. 다당제 운동으로 정치경력을 시작해 몇 차례의 선거를 거치며 2010년 개헌과 2017년 대선 결과 무효화 판결까지 이끌어낸 것이 그였다.

이번 선거에 실질적인 부정이 있었는지, 그 부정이 선거 결과를 취소할 정도인지는 우리가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오딩가 후보의 선거 불복은 그 자체로 케냐가 쌓아온 민주주의의 역사다. 폭력과 갈등으로 정권을 찬탈하지 않고, 투표와 판결로 정권의 향방을 결정지을 수 있다는 케냐 정치의 자산이다. 합의된 경로를 통해 서로가 동의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낸다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바닥부터 쌓아온 이의 역사다.

결과가 어떻든 오딩가 후보의 이번 선거 불복은 여러 논의를 불러올 것이다. 선거의 투명성과 개표 결과의 신속한 공개, 이 결과를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논박이 오갈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청원과 판결이라는 법적인 절차로, 폭력 없이 해소할 수 있도록 만든 것 역시 오딩가 후보가 만든 토양이었다.

케냐는 위기에 처해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식량 수급에 차질이 생기며 식량물가는 20% 가까이 상승했다. 케냐 북부는 기후위기로 인해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70%를 넘어설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이 위기 속에서 치른 선거는 논쟁적인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선거의 결과가 윌리엄 루토 후보의 승리든, 개표 조작으로 인한 결과의 무효화든, 중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케냐는 이제 그 방법을 가지고 있다. 수차례의 갈등과 폭력, 그것을 봉합하는 합의를 통해 충분한 토양을 만들어냈다. 그 민주의 토양을 만들어낸 역사 속에 오딩가의 이름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만으로 그는 대통령이 되는 것 이상의 성과를 케냐에 안긴 셈 아닐까. 
덧붙이는 글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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