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신문 기자가 5.18 사진을 찍은 까닭은

아사히신문 아오이 가츠오 기자를 기억하며

등록 2022.08.27 11:56수정 2022.08.27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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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1일부터 7월 30일까지 '광주광역시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5.18민주화운동 아사히신문사 미공개 컬렉션 특별전이 열렸습니다. 이번 특별전은 2021년 5월 필름이 발견되어 보도가 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42년 동안 묻혀졌던 사진이 이제 42년 만에 전시회를 열어서 빛을 보았습니다. 이 특별전에서 공개된  사진은 아사히신문 기자 아오이 가츠오(青井捷夫, 2017년 작고) 집에서 발견된 사진 필름 247통 가운데 가려서 뽑았습니다.
 
         아사히 신문은 1980년5월 24일 조간 1면에 광주518 관련 기사를 싣기도 했습니다. 이 때 보도된 사진도 아오이 가츠오 기자가 찍은 사진입니다.
아사히 신문은 1980년5월 24일 조간 1면에 광주518 관련 기사를 싣기도 했습니다. 이 때 보도된 사진도 아오이 가츠오 기자가 찍은 사진입니다.박현국
 
지난 7월 11일부터 5회에 걸쳐서 일본에서 발행되는 아사히신문 석간에 광주에서 열린 사진 특별전의 뒷이야기가 소개되었습니다. 5.18이 무엇이고, 한국 현대사에서 어떤 뜻이 있는지, 왜 아오이 가츠오 기자가 사진을 찍었는지 그 이유를 말했습니다.

연재된 기사 다섯은 '어느 날 광주 거리에서'라는 부제로 날마다 주제를 달리해서 사진을 찍게 된 배경, 사진과 관련되었거나 사진에 나온 사람들과 대화, 한국 현대사 속에서 518의 의미와 역사적 해석 등을 깊이 있게 다루었습니다. 다섯번 연재된 기사의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7.11, 봉인 42년 목숨을 건 사진 필름 247개, 어느 날 광주 거리에서
7.12, 민주화를 위한 시민들의 연대, 어느 날 광주 거리에서
7.13, 참극 르포, 세계에 전하며, 어느 날 광주 거리에서
7.14, 끝까지 저항, 후회는 없다, 어느 날 광주 거리에서 
7.15, 다시 만난 역사의 목격자들, 어느 날 광주 거리에서


아오이 가츠오 기자와 사이토 다다오미(斎藤忠臣, 2014년 작고) 사진 기자가 처음부터 5.18을 취재하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서 한국에 간 것은 아니였습니다. 우연히 그해 5월 초 한국의 인삼 농사를 취재하기 위해서 강원도에 갈 목적이었습니다.

두 기자는 처음 강원도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 때 아사히신문 서울 지국장이었던 후지다카 아키라(藤高明)씨가 '아무래도 광주에서 큰일이 벌어진 것 같다. 인삼 취재보다 광주에 가서 사진을 찍고 취재를 하는 편이 좋겠다'고 제안해서 1980년 5월 19일 광주에 갔습니다.


두 사진 기자는 광주에서 큰 일이 일어난 것을 알고 열심히 취재를 했습니다. 시민과 국군 사이에 벌어진 총격, 쫓고쫓기는 숨가뿐 일들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그간 소문으로 전해진 대부분의 일들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다만 사진이 가진 속성에 따라서 공개하지 못하고, 기록으로 남겨놓은 사진도 적지 않았습니다.

두 일본 기자는 국군의 제지나 방해를 피해서 취재 현장을 옮겨다니면서 취재를 이어갔습니다. 그 때 도청청사, 광주시민과 국군이 맞붙은 곳, 부상자나 주검들이 옮겨온 전남대 병원을 비롯한 여러 곳을 다니면서 숨가쁘게 취재를 이어갔습니다. 감히 군인들이 무서워서 카메라를 꺼내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한국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곳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도 했습니다.


그 때 일본 기자들이 현장에서 본 내용은 사진에 담겨있고, 기록으로 적어서 지금도 그 때 현장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당시 전남대 병원에서 부상자들을 치료하던 의사들은 한결같이 치료비는 필요없다. 가장 두려운 것은 광주와 광주시민들이 고립되는 것이다. 어떻게든 현재 사실을 알려야한다고 말했던 의사들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5월 한달 동안 아사히신문은 조간과 석간에서 모두 70여 건의 한반도 관련 기사를 실었습니다. 처음 서울을 중심으로 학생운동, 학생 대모 등으로 제목을 뽑았습니다. 한국을 중심으로 미국과 중국의 움직임, 한반도 남북 군의 동향 등을 주의 깊게 관찰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광주민주화 운동을 표현할 때는 당시 한국 군부의 지시대로 폭도, 폭동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아사히신문에서는 서울을 비롯한 광주 518 민주화 운동 관련 사진을 일본 신문에도 보도했습니다. 아사히 신문 기자 두 명은 처음 5월 19일 광주에 들어가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3일 광주를 빠져나와 사진을 본사에 송고하고 다시 27일 광주에 들어가서 취재를 이어갔습니다.

아사히신문 기자 두 명은 망원렌즈를 비롯한 본격적인 사진 촬영 기자재를 활용했습니다. 그리고 군인들의 위협과 무서운 지시 속에서도 기자재를 적극 활용하여 취재 작업을 이어갔고, 그 때 찍은 사진 자료가 이번 특별전에 공개되었습니다. 이번 처음 알려진 자료를 활용하여 광주민주화운동의 새로운 전모를 밝히고,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아사히신문 기자들이 사진을 찍어서 보고하고 알린 덕분에 서울지국은 뒤에 한국 군사정부에 의해 10개월 동안 폐쇄되는 일을 겪어야 했습니다. 일본에서는 한국 현대사뿐만 아니라 정치, 법률을 연구하는 사람 가운데 5.18을 연구하는 전문가가 뜻밖에 많습니다.

비록 5.18 희생자의 귀한 목숨은 다시 되돌아 올 수 없지만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민주화된 한국, 발전된 한국이 존재한다고 힘주어말합니다. 아마도 당시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만 지금까지도 전두환 잔당들의 독재가 이어지고 있을 것이라는 대화가 귓가에 맴돕니다.
 
          2021년 5월 27일 아사히신문 석간에서 아오이가츠오 기자집에서 발견된 사진 필림이 발견 사실을 보고하면서 올 광주 사진 특별전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2021년 5월 27일 아사히신문 석간에서 아오이가츠오 기자집에서 발견된 사진 필림이 발견 사실을 보고하면서 올 광주 사진 특별전이 열리게 되었습니다.박현국
 
[참고문헌 및 누리집]
이상우(李祥雨)지음, 후지다카 아키라(藤高明) 清田治史 번역, 박정희 시대 그 권력의 내막, 아시히신문사,1988., 5·18민주화운동기록관 (518archives.go.kr), 2022.8.26
덧붙이는 글 박현국 기자는 교토에 있는 류코쿠대학 국제학부에서 우리말과 민속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광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후지다카 아키라(藤高明) #아사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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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3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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