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2021년 가을 충북 옥천군 이원면 원동2리 풍경.
월간 옥이네
어린 시절부터 갈망한 지역잡지 기자, 뒤늦게 따라 걷기 시작한 꿈 때문에 나는 옥천 정착을 서둘렀다. 허겁지겁 방을 구했고, 임대차 계약을 끝내자마자 전입했다. 먼저 소속되고 쭉 살며 스며들겠다는 생각이었다. 삶터를 바꾸는 긴장감이 무색하게 '서류 정착'은 20분 만에 끝났다. 옥천읍 행정복지센터로 가 전입 신고서를 제출하니 바로 군민이 됐다.
기자가 되자마자 명함 지갑에는 새로 만난 사람의 명함이 수북이 꽂혔다. 하지만 퇴근 후 숨어드는 20㎡ 남짓한 좁은 방 안에서 나는 다시 고향으로, 전북 '전주시민'으로 회귀했다. 연락처를 뒤져봐도 '같이 밥 먹을래?' 하고 물을 마땅한 이웃이 없었다.
급히 친목을 시도하려 들었다. 가족도, 연인도, 친구도 같다. 급하면 관계가 망가진다. 섣불리 친근을 들이밀자 사람들은 경계했다. "자주 연락드리겠다"고 선언하자 "왜요?"라 되물은 뒤에 이런 답을 이었다. "더 취재할 게 남았나요?" 필요할 때만 찾아와 기사만 뽑아가고 바로 남 된다며, 친한 척하지 말라는 주민도 있었다.
옥천에 얼마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공감을 이야기하자 비웃음도 당했다. 여전히 전주인 양 행동하고, 모르는 이에게 동향·동창의 공감대를 기대하는 나를 오롯이 마주한 것이다.
근래엔 조금 잠잠해졌지만 '~살이'가 한동안 유행이었다.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1년까지 다른 지역에 가 삶의 결을 달리 해보는 거다. 하지만 정착은 살이와는 다르다. 살이는 오래 묵는 객이지만, 정착은 주민이 돼야 하는 일이다. '살이'의 마음가짐으로 정착을 시도하면 필패다. 마음이 급했던 건 옥천을 계속 '살이'의 공간으로 인식해서가 아니었을까.
옥천 정착 100일, 모든 게 놀라웠다
먼저 통장 명세, 휴대전화 사진첩, 통화 기록, 내비게이션 목적지 목록 같은 내 생활 반응을 추적해 100일의 감상을 역산했다. 정착 직후부터 긍정적으로건 부정적으로건 '문화 충격'을 받은 것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옥천에 올 때 군 단위 농촌 지역 생활 방식은 다 비슷하리라 예단했다. 대학·직장 생활하며 전북 완주군에서 몇 년 거주해봤기에 더 그랬다. 하지만 같은 농촌이어도 생활 양식은 꽤 달랐다. 지역 정책, 주민 정서, 하다못해 도로 설계 사상과 음식물쓰레기 분리·배출 방법까지 판이했다.
첫 번째 충격은 공영주차장 무료였다. 코로나19 범유행 피해 복구를 위해 방문객 편의를 제공한다는 멋들어진 이유였다. 나는 도시 생활에서 얻은 주차 피로감을 한 방에 녹였다.
그런데 도로에도 자유롭게 주차하는 이가 많았다. '불법주정차 단속 중' 팻말이 떡 붙어있고 카메라가 눈을 부릅뜨고 있어도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장박(장기 무단 주차)'을 당연시하는 화물차와 인적 드문 지방도에 세워진 농기계들은 도로를 차고지처럼 썼다.
옥천읍 시가지와 가화·양수리 지역을 잇는 '가화지하차도'는 더 놀라웠다. 금거북이길에서 양수리를 가려면 지하차도 옆길을 따라가다 180도 유턴해 지하차도로 들어가야 하는데. 유턴 표지판도, 유턴 차선도 없다. 색칠된 유도로도 직진만 가리킨다. '교통지옥'이라 별명 붙은 복잡한 부산 도로에서도, 서울에서도 접한 적 없는 희귀한 도로 설계였다.
'물가 환율'도 나를 아리송하게 했다. 전주, 완주도 곡창지대니 옥천도 비슷하리라 예상한 농산물값은 훨씬 쌌다. 솔직히 옥천로컬푸드 직매장 상품가는 '전주푸드 직매장' 시세에 비하면 '염가' 수준이다. 비쌀 거라 예측한 공산품 가격은 대동소이했다. 그런데 또 미용실 등 서비스 비용은 고환율이었다. 모든 게 예상 밖이었다.
옥천 최고의 '와일드카드' 칭찬은 꼭 해야겠다. '향수OK카드' 말이다. 상시 10%인 '인센티브' 혜택도 우수하지만, 프랜차이즈건 뭐건 사업장이 옥천이면 사용 가능하다는 점이 최고다(다른 지역화폐는 지역 상권 보호를 이유로 업장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또 옆 동네 대전을 비롯해 지역화폐 예산을 마구 삭감 중인 타지와 달리 꿋꿋하게 10% 비율을 고수하고 있어 감격스럽다.
음식물쓰레기와 재활용품 분리·배출 기준은 도저히 옹호할 수 없다. 이사 첫날, 음식물쓰레기통을 찾다 들은 이야기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옥천에서는 일반쓰레기예요." 양을 줄이려고 물기를 꼭꼭 쥐어짜 담은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들고 황망히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쓰레기 집하장에는 재활용 쓰레기들이 커다란 비닐에 마구잡이로 쑤셔 넣어 버려져 있었다. 빈 페트병 포장을 뜯고, 뚜껑까지 따로 구분해 분리수거 한 노력이 상장 폐지된 장외 증권 마냥 액면가 높은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고액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