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경로당에서 내려다 본 법화마을 풍경. 민가와 경로당 사이에 논이 자리하고 있다.
이돈삼
'벌교 주먹'의 상징이 된 안규홍(1879~1911)은 의병장이었다. 1908년 보성에서 의병을 모으고, 전라도 일대에서 일본군과의 싸움에 나서 파청대첩, 진산대첩, 원봉대첩에서 대승을 거뒀다. 파청은 보성군 득량면 버들고개, 진산은 보성군 문덕면 진산마을, 원봉은 보성군 복내면 원봉마을을 가리킨다.
하지만 일제의 '남한폭도(의병) 대토벌작전'으로 일본군에 붙잡혔다. 1911년 대구감옥에서 31살의 나이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전해산, 심남일 등 유생 출신과 달리 안규홍은 머슴 출신의 의병장이었다. 정유재란 때 의병장이었던 문강공 안방준(1579~1654)의 10대손이기도 하다.
안규홍은 1879년 4월 10일 보성읍 우산리 택촌에서 태어났다. 4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따라 친척뻘 되는 박제현에 의지해 살았다. 10살 때부터 머슴살이를 시작, 20여 년 동안 머슴으로 살았다. 안규홍을 '담살이', 그의 의병부대를 '안담살이 의병'이라 부르는 이유다. 담살이는 꼬마 머슴을 일컫는 지역말이다.
안규홍이 죽은 뒤에 쓰여진 <담산실기(澹山實記)>에 의하면, 그는 매우 강직한 성품을 지닌 인물이었다. 횡포를 부리던 세금 징수담당을 혼내줬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일제의 토지 침탈과 일본인들의 횡포를 보고,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투쟁에서 큰 자극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