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부산에서 열린 MADEX에서 풍산 직원이 ‘친환경 탄약’을 소개하고 있다.
전쟁없는세상
직원의 친절한 설명에 눈앞이 아득해졌다. 나와 같은 설명을 들은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될까. 그 사람들은 '친환경 탄약'이 만드는 '친환경 전쟁'을 상상하게 될까.
'친환경 전쟁'이 온다
그날 이후로 방산기업들의 '친환경' 행보들을 주의깊게 살펴보게 되었다. '친환경 탄약'을 처음 만났을 땐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친환경'과 '무기'의 요상한 조합은 생각보다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었다. 기후위기와 환경파괴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요구하는 사회적 압력이 강해지자, 방위산업체 역시 이에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다.
한국의 대표적인 방위산업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대표 사업은 항공엔진 제작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1년 조직개편을 단행하며 '전기추진 태스크포스'를 두고, 항공엔진의 친환경 추진시스템을 연구하겠다고 결정했다.
한화의 3대 방산기업들이 속해 있는 한화그룹은 올해 5월 향후 5년간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20조원을 미래 사업인 에너지, 탄소중립, 방산 및 우주항공 분야에 투자하겠다는 내용이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 그리고 탄소중립 사업 및 친환경 설비에 투자하여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에너지 안보 구축에 기여하겠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방산분야에 투자해 K-9 자주포와 레드백 장갑차의 글로벌 진출에 힘쓰겠다는 일련의 계획은 한화의 '탄소제로' 행보를 뒷받침한다.
현대로템 역시 홈페이지를 통해 자사의 친환경 사업을 소개하며, 그 중 하나로 한국군대에 납품된 다목적 무인차량을 내세우고 있다. 전투에 쓰이는 대부분의 전투차량이 석탄연료를 사용하는데 반해, 현대로템의 다목적 무인차량은 전기 배터리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2021년 ADEX에서 처음 공개된 디펜스 드론 역시 이들이 만든 친환경 제품 중에 하나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수소연료전지 기반인데다가, 드론을 수소전기차에 장착할 수 있어 친환경적이라는 설명이다.
앞서 소개한 풍산은 홈페이지를 통해 자사의 안전보건환경 경영방침을 소개하는 한편, 모 환경단체에 후원금을 제공했다는 사실과 함께 본인들의 사회공헌활동을 홍보한다. 그러나 대표적 비인도적 무기인 확산탄 사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무기박람회는 이들 방위산업체의 '친환경' 행보를 홍보하기에 아주 좋은 플랫폼이다. 각국의 무기구매 담당관에게 자사 무기가 환경부담을 얼마나 줄여줄 수 있는지 어필하는 한편, 박람회장을 찾는 시민들에게는 '평화를 지키는' 영웅서사에 더해, 친환경이라는 착한 면모까지 뽐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무기박람회에서 '지속가능한', '친환경', '탄소제로'라는, 이토록 순진무구한 수식어들을 발견하게 될 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른 채 멍하니 그 단어들을 바라보게 된다.
아주 낯선 장면을 상상해본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무기가 벌이는 '지속가능한' 전쟁. 전투차량이 탄소를 내뿜지 않고, 장갑차는 분쟁지역으로 팔려나가지만 친환경 에너지는 개발되고, 전투에서 쓰이는 탄피가 열대우림에 떨어져도 납 오염을 발생시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미래를 덜 걱정하며 발 뻗고 편히 잠에 들 수 있는 걸까.
방위산업과 이별하지 않으면 기후정의는 실현될 수 없다
기후위기와 군사활동은 지구 위에 살아가는 생명들에게 실존적인 위협이다. 기후위기는 이미 수많은 인간/비인간 동물의 생명을 비롯해 지구생태계를 심각하게 파괴시키며 멸종을 걱정하게 만들고 있다. 살상과 파괴를 수없이 반복해온 전쟁과 군사활동 역시 우리의 생존을 위협한다. 이미 천문학적인 비용이 무기개발과 생산에 사용되었고, 가장 잔인한 기술들이 집약된 오늘날의 핵무기는 모든 종의 종말을 가져올 만큼의 살상력을 갖추게 되었다.
각국이 군비경쟁을 지속하며 더 많은 예산, 더 많은 기술을 무기개발에 투자한 결과다. 무기가 우리의 삶을 지켜줄 것이라는 환상은 더욱 심화된 생존위협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멸종을 막는 문제에 대해 생각한다면, 무기개발과 군비경쟁이 만드는 위기의 무게는 기후위기의 무게보다 결코 가벼울 수 없다.
군사활동은 그 자체로 기후에 대한 위협이다. 전쟁, 무기개발, 군대, 군사기지는 엄청난 화석연료를 사용하며 막대한 양의 탄소를 배출한다. 미국 브라운대학 왓슨연구소에 따르면, 2017년 한해 동안 펜타곤 (미국 국방부)이 배출한 탄소의 양은 스웨덴이나 덴마크 같은 나라들의 전체 탄소배출량보다 많다. 이처럼 군사활동이 엄청난 양의 탄소를 배출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군사활동이 얼마만큼의 탄소를 배출하는지 알기도 어렵다.
2015년 파리협정에서는 군사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 보고를 의무가 아닌 '자발적 선택사항'으로 정했다. '국가안보사항'이라는 이유에서다. 탄소배출에 대한 군대의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1997년 교토 의정서에서 미군이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책임에서 면제된 이후, 세계의 어떤 군대도 그 책임을 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논의에서 군사활동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어떤 대응책이 나오더라도 그 효과를 갖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위기는 착취해도, 착취 당해도 괜찮은 불평등한 사회 체제의 병증이다. 인류가 이러한 체제를 견고하게 만들어 오는 데 큰 기여를 했던 것은 단연코 무기다. 더 강한 무기, 더 많은 무기는 패권국이 그 힘을 휘두르는 행위를 뒷받침했고, 이들이 착취구조를 유지하고 이용하며 탄소를 내뿜을 동안 세계는 더욱 불평등한 체제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무기와 군대는 불평등한 체제를 유지하고 견고하게 만드는 중요한 축이다. 기후정의를 실현하는 일은 전쟁없는세상을 만드는 일과 다를 수 없다. 기후위기 대응책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친환경 전쟁'은 여전히 기후에 대한 위협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