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포대
이승숙
신미양요 때 파괴된 덕진진과 덕진돈대는 그대로 방치되었다. 세상은 변했고, 더 이상 돈대의 필요성이 사라졌다. 덕진돈대는 다른 돈대들과 함께 방치된 채 폐돈의 길을 걸었다.
1970년대 중반, 박정희 정권은 미국의 카터 행정부와 갈등을 겪었다. 정부는 우리 역사에서 미국과 대적해서 이겼던 전쟁인 신미양요를 떠올렸고, 그 현장을 복원하는 전적지 정화 사업을 벌였다. 광성보와 덕진진 그리고 초지진이 신미양요의 현장이었다.
1976년 강화 전적지 복원 사업 때 덕진진의 성곽과 문루를 복원했다. 남장포대의 15개 포혈(砲穴)도 복원했다. 과거 덕진진 관할 아래 있던 돈대와 포대에는 모두 60여 문의 화포가 있었다. 복원된 덕진돈대에는 4개의 포대(砲臺)가 과거의 그 자리에 그대로 설치되었다. 남장포대의 15기의 포혈도 복원되었다. 현재 남장포대에는 7문의 대포가 놓여 있어 과거를 짐작할 수 있도록 해준다.
덕진돈대 성벽 위에 올라 바다를 바라본다. 좁다란 이 바다는 한양으로 드나들던 물길의 길목이었다. 흥선대원군은 나라와 조정을 지키기 위해 강화해협에 '경고비'를 세웠지만 그것은 종이 호랑이에 불과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조선은 이후 시대의 격랑을 온 몸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로부터 150년도 더 세월이 흘렀다. 현재의 우리나라는 시대의 흐름을 잘 읽고 있을까. 그때와 마찬가지로 열강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다.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시대의 흐름을 잘 읽어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겐 있다.
<덕진돈대 기본 정보>
-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373
- 입지 : 강화해협 바닷가 언덕의 꼭대기 평탄면
- 축조 시기 : 1679년(숙종5)
- 규모 : 너비- 동서 34m, 남북 26m. 둘레 - 120m. 잔존 성벽 높이 - 3.8m
- 형태 : 네모 모양
- 문화재 지정 여부 : 비지정
- 보수 이력 : 1977년 복원
- 시설 : 문 1개, 포좌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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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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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문을 닫아라" 흥선대원군의 엄명이 없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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