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대화는 늘 많은 방해를 받고, 시간은 충분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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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건조기에서 꺼내 바닥에 놓아둔 채 다른 일 하느라 미처 개는 것을 깜빡했다. 그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천진하고 태연하게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남편을 보며 부아가 치밀었다. 부탁도 하루 이틀이지, 스스로 알아서 해줬으면 싶은 일들은 셀 수 없다.
남편이 집안일을 나몰라라 하는 편은 아니다. 나의 부족함이나 빈자리를 잘 메우고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재능도 있다. 체력적으로 버거운 아홉 살 아들과도 잘 놀아준다.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비슷한 연령대 남편 중 평균 이상일 것 같다.
그러나 그도 다른 비슷한 또래의 우리 세대 남편들처럼 살림(한 가족이 살아가는데 요구되는 모든 행위)에 대한 관여도의 수준 자체는 낮은 편이다. 한 지인의 표현처럼 기획 노동(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자발적으로 하는 노동)에 '젬병'이라고나 할까.
나 역시 처음부터 살림을 할 줄 알았던 게 아니다. 잘하지도 못하건만 결혼과 동시에 자연스레 많은 일들을 떠안게 되었다. 엄마와 주부, 직장인의 세계를 정신없이 오가다 보면 하나도 제대로 못하고, 마음만 바쁘고, 괜찮은 걸까 자꾸 반문하게 되는 게 일상이다.
종종 비슷한 처지의 가까운 지인들에게 막막함과 스트레스를 토로하며 위로받기도 하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따로 있다. 이런 내 심정을 조금 더 알아주고 실제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남편이기 때문에 그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늘 한구석에 품고 있다.
그러나 바람과 현실은 다르다. 각자 바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저녁을 챙겨 먹고 아이를 챙기다 보면 지쳐서 잠들기 일쑤. 더군다나 '무뚝뚝함'으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인 남편에게 말을 걸었다가는 본전도 찾기 어렵다. 좀처럼 기대했던 반응이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서운하고 상처받는 건 오롯이 내 몫이다.
내 딴에는 어렵게 꺼낸 말들이지만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남편의 마음에는 안타깝게도 가닿지 않는다. 그가 그렇게라도 머리를 비우고 쉬고 싶은 기분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상황의 기승전결을 설명하기에 우리의 대화는 늘 많은 방해를 받고, 시간은 충분하지 못하다.
하루 내내 겪었던 마음 같지 않은 일들, 남편과 나 사이에 쌓아두었던 해묵은 감정을 대화로 풀어내고 싶지만 결국 입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그의 무심한 태도나 작은 행동 하나가 불씨가 되어 결국 터져 나오게 되는 것이다. 바로 오늘 아침처럼.
온몸과 마음이 무겁다. 지면 답답하지만 이겨도 지는 싸움, 무엇보다 세상에 혼자 내버려진 기분이 드는 그런 갈등이다.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버틸 것이 막막했지만, 속상함을 잠시 내려두고 출근과 동시에 정신없이 밀려드는 일을 쳐냈다.
책상 위에 올려둔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는 남편. 받아보니 외근을 나왔다가 우리 회사 근처로 왔다고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었다. 채비하고 나가보니 비는 여전히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수요일이 '가정의 날'인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