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황장엽 모습
오마이뉴스이종호
'주체사상의 대부 vs 배신자'
남과 북에서 고 황장엽을 설명하는 극과 극의 키워드다. 극명한 평가만큼 그의 삶도 파란만장했다.
평양상업학교, 도쿄 주오대학 야간 전문부 법과 2년 재학, 삼척 시멘트 광산에서 강제징용, 모스크바종합대학 철학연구원 유학,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모스크바 유학,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사상 비서와 11년간 제6·7·8대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장… 이 중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대한민국 국회의장과 같은 직책이다. 특히 당 중앙위원회 비서는 최고인민회의 의장보다 훨씬 중요한 자리다.
그의 이력 중 가장 눈에 띄는 행적은 '주체사상 정립'이다. 그는 북한에서 주체사상연구소장, 노동당 중앙위원회 사상 비서 등을 맡아 북의 사상통제와 교육을 책임지는 상징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는 1997년 숙청 위협을 받자 탈북해 한국으로 망명했다. 망명 직후 그의 일성은 "북한의 핵 개발계획이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고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폭로였다.
자신이 정립한 주체사상을 비판하던 그는 2010년 10월 10일 심장마비로 숨졌다. 공교롭게도 10월 10일은 북한의 노동당 창건일이기도 하다.
사망 당시 그의 남한 내 호칭은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주체사상의 대부'였다. 그런 그가 사망하자마자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국립묘지법상 훈장을 받는 등의 공적이 없어 현충원에 안장될 대상이 아니었다. 어찌 된 일일까?
"현충원 안장 당연" vs. "잘못된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