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의 집들이. 길고도 험한 작업이었다. 다음에는 그냥 외식을 할 생각이다.
박종원
임기응변에 기댄 결과 그대로 먹을 만한 수준의 결과물은 나왔다. 예의상일지언정 맛있다는 말은 무리 없이 나올 것 같았다. 혼자서 생각했다. 그래, 최선을 다했다. 이 정도면 훌륭하지. 근데 두 번은 못 하겠다. 다음에는 그냥 족발에 탕수육 시켜야지, 하하!
다행히 집들이는 좋은 분위기에서 무사히 끝냈다. 남김없이 다 비워진 파스타 접시가 그 증거였다. 시금치 크림 스피니치 레시피를 따로 알려달라는 제수씨의 칭찬도 진심인 것 같았다. 스테이크가 조금 남긴 했지만 내 생각에 그건 맛보다는 양의 문제였다. 치킨 한 마리를 넷이서 먹고도 남기는 집안이니까.
이번 집들이에서 다시금 깨달았다. 1인분이야말로 가장 맛있는 레시피라는 사실을. 이탈리안 셰프들이 기어이 파스타를 하나하나 따로 조리하는 이유를. 하지만 주방의 생산량을 넘어서는 주문을 소화하려면 차선책인 대량 조리를 택할 수밖에 없다. 그게 가정집 집들이라면 말이다. 이럴 경우 요리할 때 예상하기 힘든 화학작용들이 벌어질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의심하는 것이다.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그리고 레시피나 계량에 기대지 말고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음악도 끄고 핸드폰도 옆에서 치워 놓자. 집중해야 한다. 왜 면의 상태가 바뀌지 않지? 간은 제대로 된 건가? 강박증에 걸린 것 마냥 수시로 상태를 체크해야 비싸게 산 재료를 지킬 수 있다.
간도 최대한 보수적으로 봐야 한다. 경험상 조미료는 4인분 레시피에서 15% 늘린 양을 구해 계량하는 게 적절하다. 인원 수가 50% 늘었다고 조미료도 50% 더 치면 요리는 망한다. 소금의 농도를 그만큼 올리면 어떤 요리도 당연히 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결국 판단은 레시피가 아닌 자신이 해야 한다.
대량 조리는 그 자체로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