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사진을 통해 맛을 직접 느낄 순 없어도, 맛있어 보이는 느낌은 공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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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소풍 도시락'을 검색해보았다. 주르륵 나오는 소풍 도시락 이미지를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달팽이 모양 김밥, 문어 소시지, 병아리 메추리 알, 캐릭터 도시락까지…. 작은 도시락 속에는 수많은 예술 작품들이 구현되어 있었다.
고난도의 도시락들은 뒤로 한 채, 일단 내가 따라 할 수 있을 만한 도시락을 찾아본다. 하트 도시락? 곰돌이 유부초밥?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몇 년 전, 첫째 도시락을 꾸며보겠다고 치즈로 눈알 만드느라 고군분투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릴 적 소풍 도시락
우리 땐 그냥 김밥 한 줄이면 충분했는데. 어릴 적 내 소풍 도시락은 어땠는지 기억을 더듬어본다. 소풍 날 아침이 되면 우리 집 주방은 평소보다 더 분주했다. 엄마는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밥을 안쳤다. 프라이팬 위에는 햄과 달걀지단이 구워지고, 뜨거운 물에 데친 시금치는 더 진한 초록빛을 띠었다.
엄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에 소금과 참기름을 넣은 뒤 주걱으로 저어주었다. 밥 냄새만 맡아도 얼른 김밥을 먹고 싶어서 애가 탔다. 때로는 엄마 몰래 햄 한 줄을 슬쩍 집어먹기도 했다. 커다란 김 위에 밥을 쓱쓱 펴 바른 뒤 여러 가지 재료들이 나란히 자리에 눕는다. 김밥을 말고 겉에 참기름을 발라주면 드디어 김밥 한 줄이 완성되었다.
도시락 가방과 물통을 꼭 끌어안고, 소풍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소풍 장소에 도착하면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각자의 도시락을 펼쳤다. 엄마가 만든 김밥은 요즘 인기 있는 도시락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게다가 야외에서 먹는 김밥은 이미 식어있기 일쑤였다. 하지만 괜찮았다. 누가 뭐래도 즐겁고 맛있는 점심이었다.
사실 어떤 도시락통이었는지, 김밥 모양이 어땠는지, 맛은 어땠는지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소풍 도시락이 좋았다고, 맛있다고 단언할 수 있었던 건 소풍에 대한 설렘과 주변의 풍경, 그리고 엄마의 정성이 느껴져서가 아니었을까.
결국, 나는 그냥 내 스타일대로 도시락을 싸기로 했다. 우선 커다란 김을 반으로 자른다. 아이가 좋아하는 재료인 햄, 당근, 단무지, 우엉을 넣고 김밥을 꾹꾹 말아준다. 김밥을 만들고 남은 밥에는 다진고기와 김 가루, 참기름을 살짝 추가하여 섞는다. 섞은 밥은 동글동글하게 빚어 평소에 먹는 주먹밥으로 만든다. 그렇게 만든 꼬마김밥과 주먹밥을 도시락통에 조심스럽게 담는다.
아, 나도 소풍 가고 싶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둘째가 부엌으로 달려온다.
"엄마, 내 도시락은?"
나는 방금 닫은 도시락 뚜껑을 다시 열어서 도시락을 보여준다. 혹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어쩌지? 숙제 검사를 받는 느낌으로 조심스레 아이의 얼굴을 바라본다. 다행히 아이의 표정이 밝다. 자기가 좋아하는 김밥이란다.
아이는 분주히 소풍 갈 채비를 한다. 평소엔 꾸물거리며 준비하더니, 오늘은 시키지 않아도 양치도 후딱, 옷 갈아입기도 척척이다. 좋아하는 동요도 흥얼흥얼한다. 도시락통과 물통이 담긴 유치원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선다. 늦으면 안 된다며 발걸음이 빨라진다.
둘째 유치원을 데려다주고 돌아서는 길. 아이에게는 내가 만들어준 도시락이, 오늘의 소풍이 어떻게 기억될지 궁금해진다. 조금 쌀쌀하지만 파란 하늘과 익어가는 단풍이 눈에 들어온다. 문득 나도 소풍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 풍경 속에 앉아서 가을을 천천히 음미하고 싶다.
이 가을, 가족 또는 친한 사람들과 소풍을 떠나보면 어떨까. 안 되면 혼자라도 좋다. 거창하고 화려한 도시락이 아니더라도, 간단하게 먹을 거리, 마실 거리를 챙겨서. 물론 잊지 말자. 먹고 난 흔적은 남기지 않기로. 아름다운 자연을 계속 누리고 싶다면 쓰레기는 잘 챙겨오시길.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시민기자들이 '점심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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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을 가장 소중한 순간이라 여기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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