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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삼민사' 설립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 32] 형식은 등록제였지만 실제는 허가제였던 출판사 등록

등록 2022.11.14 15:36수정 2022.11.1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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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헌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 ⓒ 자료사진

 
40대 중반이 되었다. 1959년 11월 장남 규연이 태어나고, 1961년 11월 차남 규우, 1964년 장녀 경미, 1968년 3남 규훈이 출생하여 생활비와 한창 교육비가 많이 들 시기였다.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한 나의 실업상태는 장기화될 조짐이 짙어갔다. 변호사회와 종교단체 같은 데서 성금으로 도와주기도 했고, 심지어 아이들 등록금을 마련해준 분도 있었다. 하지만 무작정 아무런 수입 없이 살아갈 수는 없고, 무언가 생업을 개척해야 했다. 그 무렵, 권력에 밉보여 직장에서 추방된 '백수'들 중에는 출판사를 차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왕 머리에 '먹물'이 들어 있는데다 영세한 밑천으로도 시작할 수 있다는 출판의 이점이 작용했던 것이다. 그런 시류(?)에 따라서 나도 출판사를 생각하게 되었다. (주석 3)

1970~80년대 한국출판계는 호황기였다. 정치적 탄압이 극심했던 시기에 출판계가 호황기였다면 역설이지만 사실에 가깝다. 정치ㆍ노동ㆍ학생운동계의 우수 인력이 출판업에 뛰어든 것이다. 공직이나 기업에 취직의 길이 막히면서 자영업을 택하였다. 

의식이 있는 청년들은 기존 출판사에 취업하기도 하고 스스로 창업을 하였다. 소액의 자금으로 대부분 혼자서 하는 출판사였다. 그래서 정부의 압수와 금서조치 등 탄압에도 불구하고 많은 출판사가 설립되고 각종 우수 도서가 대량 출간되었으며, 그런 사정을 아는 지라 국민(독자)은 책을 샀다. '불온서적'이란 관의 딱지 붙은 책은 은밀히 팔리고 거래되었다. 유통구조도 다양했다. 

1978년 6월 도서출판 삼민사(三民社)를 아내 이름으로 등록신청을 하였다. 형식은 등록제였지만 실제는 허가제여서 당국은 재야 인사나 운동권 출신들의 출판사 등록을 방해하는 사례가 많았다. 그래서 아내나 가족 또는 친지 명의로 한 것이다. 

교정보는 직원 한 명과 기획ㆍ원고청탁ㆍ수집ㆍ편집ㆍ교정ㆍ제작ㆍ영업을 하였다. 다행히 각계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의 지원이 있었다. 함석헌ㆍ김재준ㆍ서남동ㆍ안병무ㆍ송건호ㆍ김중배ㆍ리영희ㆍ장을병ㆍ한완상ㆍ김낙중 등의 원고를 모을 수 있었다. 당국은 삼민사를 방치하지 않았다.

"첫 번째 나온 신간부터 납본필증이 안 나오고, 이른바 판금에 걸려서 문공부를 드나들어야 했다. 또 형사들의 방문을 받아야 했다." (주석 4)


그는 자신의 출판사에서 수필집 <내릴 수 없는 깃발을 위하여>, 평론집 <허상과 진실>, <법창에 부는 바람> 등을 간행하였다. 삼민사는 반독재 민주인사들의 저서를 내는 출판사로 자리매김되고, 언론과 서점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그렇다고 '한가하게' 출판사나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1979년 3월 재야민주인사들의 민주주의국민연합이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으로 발전적 해체를 도모하면서 윤보선ㆍ함석헌ㆍ김대중을 공동의장으로 할 때 한승헌은 집행위원으로 참여하였다. 

'국민연합'은 선언문에서 유신체제 철폐와 민주정부 수립을 당면목표로 밝히고,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해 평화적으로 투쟁할 것을 천명했다. 그는 시국사건 전담 변호사에서 이제 민주화운동의 활동가로 나선 것이다. 이 해 5월 국제앰네스티 한국위원회의 전무이사로 선출되었다. 이 단체의 조직과 운영의 책임을 맡는 자리였다. 


주석
3> <자서전>, 205쪽.
4> 최종고, 앞의 책, 80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한승헌변호사평전 #시대의양심_한승헌평전 #한승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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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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