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는 홍희진 청년진보당 대표
(사)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 진보당에 어떻게 가입하고, 어떻게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나.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성적으로 줄 세우고 차별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모의고사 점수 상위권 학생의 이름과 점수를 게시하거나, 학생회를 하려면 반에서 5등 안에 들어야 했다. 리모델링한 독서실을 쓰는 것도 그랬다.
담임선생님과 친구들과 이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이건 아닌 것 같다, 이게 잘못됐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전교회장 선거에 나가보자고 했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메시지를 낼 수 있는 기회니까. 보통 전교회장 선거면 노래 개사해서 부르고 피켓 들며 유세를 하는데 저는 학교가 성적으로 학생들을 차별해선 안된다는 입장문을 교문 앞에서 나눠줬다.
그러면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의견을 표출하고 그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을 만나고 모아내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정치구나. 대학에 들어간 후 정치활동을 열심히 하는 학회를 만나게 되었다. 학회에서 만난 선배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진보정당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당에 자연스레 가입하게 되었다."
- 당 가입을 하는 것과 당에서 당직을 맡는 것은 다를텐데 언제, 어떻게 당직을 맡게 되었나.
"2019년에 진보당 인권위원장으로 처음 당직을 맡았다. 상설위원회 장은 원내정당이라면 국회의원 몇 번을 해야 위원장을 맡는데 저희는 원외정당이어서 선출직 경험이 중요하지 않았던 것도 있고, 진보정당이다 보니 여성과 소수자 이야기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청년 당원이 인권위원장을 맡았었다. 다음 인권위원장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고 해보고 싶다고 지원했다.
인권위원장 역임하면서 중앙당에서 일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느꼈다. 제가 위원장할 때 선거가 많았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대통령선거, 지방선거까지. 중앙당에서 선거를 하는 일은 참 힘든 일이구나. 나는 이제 평당원을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던 차였다. 그러면서도 한국 사회에서 여성과 청년, 소수자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이 청년진보당의 역할로서 더 중요해지겠다 생각했다. 내가 대표를 하면 그런 목소리의 반경이 넓어질 수 있지 않을까,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고 청년진보당에서 내 역할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 여성과 청년, 소수자 인권을 더 잘 이야기하는 청년진보당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고 했는데. 어떤 계기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
"재보궐선거 이후 '이대남' 담론이 등장하고 청년 정치가 부상하면서 많은 고민이 들었다. 한국 정치 지형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청년 정치의 폭은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청년 정치인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면 이제는 아니지 않나. 나이가 청년인 정치인이 많아졌다. 이전에는 청년들이 투표를 안 해서, 정치 참여를 안 해서 문제라고 했지만 요즘은 청년들의 투표율도 정치참여율도 높다.
'이대남', '이대녀'라는 단어는 기성정치에서 청년들을 부르기 쉬운 방법으로 묶어낸 것이고, 그것만으로 청년들의 삶을 담아낼 수 없다. 청년이라는 단어 안에도 다양한 계급과 계층 청년들이 있고 각기 다른 문제가 있다. 저는 이제 청년 정치라는 단어만으로 엮어낼 수 없는 '어떤 청년'의 '어떤 정치'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