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경기지부 이규선 지부장(오른쪽)과 한국와이퍼분회 최윤미 분회장(왼쪽)은 국회 앞에서 한국와이퍼 위장청산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단식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11월 21일 현재 단식 15일째다.
정현철
㈜한국와이퍼는 '12월 30일 회사를 폐업한다'고 밝혔다.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천천히 출구도 없는 곳으로 밀려가고 있다.
'한국와이퍼 사태'에는 등장인물이 많다. 우선 한국와이퍼 노사가 있다. ㈜한국와이퍼에 100% 출자한 일본 덴소 자본과 일본 덴소의 한국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덴소코리아(아래 덴소)가 있다. 또한 덴소의 와이퍼 시스템을 매입하기로 한 디와이와 현대자동차가 비중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많은 등장인물 중 놀랍게도 ㈜한국와이퍼는 주연이 아니다.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이 사태의 주인공은 덴소와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다. 최근 디와이가 주연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대장동 사건만큼 복잡하네." 한국와이퍼 사태를 전해 들은 이가 탄식하듯 내뱉은 말이다. 복잡한 것은 이해 관계가 얽혀 있고, 편법이 난무한 탓이다.
한국와이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자동차의 와이퍼를 만드는 곳이다. 자동차에 부착되는 와이퍼는 흔히 마트에 가면 살 수 있는 와이퍼 블레이드 뿐만 아니라 암, 링케이지, 모터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결합 되어 있다. 보쉬가 와이퍼 사업을 만드는 회사 이름을 '케이비와이퍼시스템(주)'이라고 붙인 이유다. 우리나라에서 완성차에 와이퍼 시스템을 납품하는 곳은 덴소, 보쉬, 디와이 세 군데다. 덴소와 보쉬는 현대기아차에, 디와이는 GM에 주로 와이퍼 시스템을 납품해왔다.
덴소는 더 이상 와이퍼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업을 접는 것이야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자동차 부품회사는 그렇게 쉽게 사업을 접을 수 없다. 현대자동차가 부품 이원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입장에서는 보쉬가 와이퍼 시스템을 독점하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 디와이가 덴소의 '와이퍼 시스템' 전체를 사들였으면 '한국와이퍼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부터 억지스럽고, 불편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모두가 행복한 결말 대신 해고, 투쟁, 탄압, 단식, 파업 등의 단어가 등장한다. 수 십년간 흔하게 봐온 풍경이다. 거북하지만 익숙하다. 그것은 이 이야기의 시나리오를 우리나라 최고의 법률회사가 썼기 때문이다. 한국형 노조파괴 시나리오라고 할까.
'덴소 특별근로감독' 통해 불법 여부 살펴야
덴소는 몇 년 전부터 와이퍼사업을 정리하려고 했다. 한국와이퍼는 신차수주를 받지 않는 방식으로 '2024년 폐업 계획'을 세웠다. 폐업 계획과 이를 위해 '덴소와 현대자동차가 같이 공모한 정황과 구조조정 성공보수와 같은 전형적인 노조 파괴 공작'은 지난 9월 우원식 국회의원 폭로로 확인되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2018년의 일이다. 덴소는 폐업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다. 2020년, 2021년 한국와이퍼는 고용안정 투쟁으로 몸살을 앓았다. 결국 노사간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했다. 내용도 파격적이었다. "회사는 ... 총고용을 보장한다" "회사는 청산, 매각, 공장이전, 구조조정의 경우 반드시 노동조합과 합의한다" "회사는 덴소의 개입으로 대체 생산 체계를 마련하지 않는다" 이 정도면 됐다. 조합원들은 안심했다.
하지만 덴소는 더 치밀하게 폐업을 준비했다. 우선 대체생산체계를 마련했다. 한국와이퍼가 아닌 곳에서 와이퍼를 만들어 현대차에 납품하는 체계를 만든 것이다. 노조법 43조와 단체협약 위반이다. 지난 10월 5일 국정감사에 출석한 온다 요시노리 덴소코리아 사장은 "고객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변명했다. 고객사와의 약속은 불법적으로 지키고, 직원들과의 약속은 불법적으로 안 지킨다. 그래도 되는 이상한 자본주의다.
지난 7월 7일 덴소코리아 와이퍼사업부는 매각, ㈜한국와이퍼는 청산을 발표했다.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조치였다. 한국와이퍼 청산의 이유는 누적적자였다. 한국와이퍼는 지난 10년간 4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MBC <뉴스데스크>는 지난 9월 19일, 덴소는 내부거래를 통해 한국와이퍼 등은 적자구조를 만들고 지난 10년간 4400억이 넘는 돈을 일본 본사가 챙겼다고 보도했다. 이후 정부로부터 수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 외국투자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와이퍼 시스템의 일부는 매각, 일부는 청산 한다는 것은 '몸의 일부를 잘라내어 없앤 후에 파는 것'처럼 억지스러운 일이다. 이 억지스러움은 결국 '노조'를 빼고는 이해할 수 없다. 회사의 이후 행보는 이를 증명한다. 청산하는 회사에서 굳이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12월 31일 회사를 정리하면 그만인데, 왜 미리 희망퇴직자를 받는 것일까. 영업양수도 대신 노조와 조합원을 정리한 후 자산매각 방식으로 한국와이퍼를 처분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억지스러운 시나리오의 가장 큰 피해자는 노동자다. 분하고 답답하다. 벼랑 끝에 몰려있다. 그래서 더 절박하게 살려달라고 구조신호를 보낸다. 비극을 피하는 길은 의외로 간단하다. 길을 터주면 된다. 이제 고용노동부와 국회의 시간이다. '덴소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매각과정에서 불법은 없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대놓고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불법대체생산을 중지시켜야 한다. 또한 디와이의 시간이다. 노조는 언제든지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 선입견을 버리고 함께 살길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는지 들어봐야 한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구조신호를 무시하지 말라. 비극적 참사를 막아 달라. 오늘도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애타게 부르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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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주세요" 노동자 230명이 보낸 구조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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