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트라우마 치료 중인 이인구 씨는 “시위나 집회 할 때 가서 뒤에 가서 서 있어주고 같이 행동하고 그게 저한테는 몸 건강해야 할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장진영
이인구 : "지난해 7월 대전에서 군산으로 옮겼어요. 여기가 원래 제 고향이거든요. 옮기면서 제가 편하게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어요. 여기 있으면 마음이 편해요.
처음에는 용균이 사진 갖다 놨는데, 세월호는 우리가 (김용균 장례 투쟁 당시) 광화문 분향소 있을 때 옆에서 만날 봤으니까 그 이름들이 안 잊히고요. 문중원(경마 기수) 농성할 때 갑자기 거기 발전기가 고장 났다고 해서, 발전 비정규직 천막에서 발전기 빌려줬는데요. 그러고 나니 우리가 너무 추워서 거기 가서 커피 얻어먹고 그랬죠.
태규(청년 건설노동자)는 '다시는(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에서 그 어머니랑 누나랑 만나서 얘기 듣고 알게 됐고요. 문송면은 몰랐는데, 우리 상담 선생님이 어느 날 얘기해주시더라고요. 고등학교도 못 간 나이에 서울에서 수은중독으로 사망한, 문송면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얼마나 안쓰러워요. 근데 또 이 문송면이 태안 사람이더라고요. 그러면서 이 아이들이 다 내 친구가 된 거죠. 혼자 여기서 애들 쳐다보고 있고, 말도 걸고 그래요. 나 오늘 서울 갔다 왔다, 1인 시위했다고 얘기하기도 하고요."
이인구씨의 공간엔 이들의 사진뿐 아니라, 지난 4년간 모아온 유인물, 손피켓, 사진, 리본 등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가장 최근 <김용균, 김용균들> 북토크 유인물까지도 서랍에 정리돼 있다. 이를 발견한 이태성씨가 눈물을 글썽였다.
이태성 : "이런 것까지 다 가지고 계시는구나. (이인구) 과장님이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도 들어요. 저보다도 더 힘드실 텐데. 저도 트라우마가 남아 있거든요. 그런데 처음 발견하시고 수습될 때까지 자리 지키셨던 과장님은 더 힘드시겠지요. 저는 그래도 밖에서 계속 사람들 만나고 싸우는데, 과장님은 여기 계시는 시간이 너무 기니까, 걱정도 되고 그래요. 그래도 과장님도 김용균을 기억하면서 버티시는 것처럼, 저도 용균이와의 약속을 생각하면서 4년을 사는 것 같아요."
이태성씨 역시 여전히 '김용균의 동료'로의 삶을 살고 있다. 사고 직후 위험의 외주화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는데, 4년 사이 석탄화력발전소에서 가장 큰 이슈는 이제 정규직화도 아니고 안전한 작업환경도 아니게 됐다. 발전소 폐쇄 과정에서 발생한 고용불안이, 남아 있는 김용균의 동료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됐다.
이태성 : "최근 삼천포, 보령, 호남 발전소까지 폐쇄되면서 이제 체감되는 거죠. 동료들에게도 불안이 와 닿는 거예요. (지난해 10월) 삼천포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이직 준비하다가 불안감 속에서 자살하는 사건까지 있었잖아요.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전선을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 뚜렷한 결과물을 만들지 못하고 있어서 아쉽죠. 교대제 변경 같은, 현재 인력을 크게 줄이지 않고도 산업 전환을 할 수 있는 방안들이 있고, 그건 정부와 자본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그래도 얼마 전 드디어 발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투쟁을 시작했거든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불안감 속에 벌써 많은 발전소 노동자들이 일을 그만두고 있다. 하지만 당장 전기를 생산해야 하니, 남은 노동자들에게는 특근과 대근이 많아지고, 노동강도가 훨씬 높아졌다고 한다. 현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은 연장수당이 많아지는 데도 좋다고 하지 못 할 정도로 일이 힘들다고 하소연한다고 한다.
염려... "SPL 산재, 용균이 사고랑 똑같더라고요"
이태성·이인구씨는 이런 상황 때문에 다시 사고가 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안 그래도 산재 보도를 보면 어김없이 사고 당시 기억이 떠오른다. 얼마 전 SPC 하청 공장인 SPL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도 그랬다.
이인구 : "뉴스 보는데, 용균이 사고랑 완전히 똑같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한참 괴로웠어요. 2인 1조로 일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잖아요. 노동자들이 기계 문제 있다고 얘기 했는데도 묵살하고, 펜스가 있어서 몸을 들이밀지 않게 돼 있어야 하는데 그런 조치가 안 돼 있어서 몸을 들이밀고 일하다가 끼어서 발생한 사고고요. 용균이 때 사고 난 컨베이어 하나만 놔두고 청소하고 바로 일 시켰던 것처럼, 커튼 쳐놓고 바로 노동자들 일 시킨 것도 그렇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