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둘러메고 기쁨 만끽하는 황희찬3일 오전(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16강 진출에 성공한 대표팀 황희찬(왼쪽부터), 황인범, 김민재, 나상호가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내가 지금은 매일 밤 숨죽이며 카타르에서 열리는 월드컵 축구 경기를 지켜본다.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공을 만진 지 1년도 안 되었지만, 나도 이제 축구인이기 때문이다. 이 재미있는 응원을 왜 2002년엔 마다했을까? 2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게 얼른 수험서를 내팽겨치고 거리로 나가 "대~한민국!"을 외치라고, 그게 네 20년의 자랑이 될 거라고 등 떠밀 텐데.
오늘도 익숙한 이름의 선수들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집에 빔 프로젝터도 텔레비전도 없어서, 한국전을 할 때면 동네에 사는 친구 애인 집에 급습해 밤 늦은 시간까지 경기를 보다가 새벽에 내 집으로 돌아오는 게 요즘 하루 일과다. 이러다간 4년 뒤 북미에서 월드컵이 열리기 전에 친구 애인이 나를 피해 다른 동네로 이사 가지 않을까 싶다. 미안합니다, 친구 애인이여. 4년 뒤에는 우리 집에도 텔레비전을 들일 테니 부디 올해는 나를 견뎌주세요. 부탁합니다.
축구를 잘 모를 때는 화려한 골 장면과 이후 코너킥 자리 근처에서 벌어지는 각종 세리머니만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골이 터지지 않으면 90분 내내 지루함을 견뎌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밖에 다른 것들에도 눈을 돌릴 줄 알게 되었다.
전이라면 우리 편 진영 사이에서만 공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는 '왜 앞으로 전개를 못 해'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저거 우리도 배웠는데. 우리 코치님이 뺏기느니 볼 돌리는 게 낫다고, 백패스 100번도 더 해도 된댔어" 하고 중얼거린다.
축구를 모를 때는 눈으로 공만 보느라 최전방 공격수들의 움직임만 들어왔었다. 이번엔 달랐다. 지난 포르투갈 전에서 나는 수비수인 김문환 선수가 상대 공격수에게서 타이밍을 뺏기지 않기 위해 치는, 초당 수십 번의 잔발만 유심히 지켜봤다. 뒤쪽에 있어 상대적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해도, 골을 넣은 선수가 아니라 덜 주목받는다 해도, 스스로는 최선을 다해 잔발을 쳤기에 결코 후회하지 않겠지.
뭐든 몸으로 겪어봐야 아는 나는 이제야 축구가 90분 동안 공만 보며 달리는 경기가 아님을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의 경기가 0대 0으로 끝난다 해도, 이는 '성과 없음'으로 정리될 수 없다. 이것이 무승부로 경기가 끝났을 때 양 팀 모두에게 '승점 1점'을 주는 이유 아닐까.
심지어 '왜 국가끼리 나누어서 싸워야 해'라고 생각하던 내가 이제는 대한민국 경기를 보며 눈물을 글썽일 줄도 알게 되었다. 모두가 인정하는 울음대장인 주장 손흥민이 울 때마다 나도 같이 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얼굴 세 군데가 함몰되어 지금 뼈가 실처럼 미세하게만 붙어 있다는 그는 책임감 하나로 뛰었다.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공중 볼 경합을 벌이는 손흥민 선수를 볼 때부터 내 마음은 울렁이기 시작한다. 얼마나 답답할까. 제대로 뛰지 못하는 스스로가 얼마나 미울까 싶어서 내가 다 아프다. 그러니 그가 경기를 마치고 잔디밭에 주저앉아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 때마다 나도 같이 울어버릴 수밖에.
꺾이지 않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