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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들의 '때 이른' 죽음은 국가에 던지는 고발장

[2022홈리스추모제③] 홈리스 병원은 전국에 73개뿐...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 폐기해야

등록 2022.12.15 17:54수정 2022.12.15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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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도부터 매해 동짓날(12.22.), 서울역 광장에는 "홈리스추모제"가 열립니다. 밤이 가장 긴 동지가 거리, 시설, 쪽방과 고시원 등지에서 살아가는 홈리스의 삶과 닮았다 여겼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회 단체들로 구성되는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이하, 기획단)은 그해에 돌아가신 홈리스분들을 추모하고, 사망으로 드러나는 홈리스 인권, 복지의 현실을 점검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활동들을 진행해 왔습니다. 올해 역시 기획단 내 <여성팀>, <인권팀>, <주거팀>, <추모팀>을 꾸려 각 의제별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각 팀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기사로 전합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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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전 서울역 계단에 '2022 홈리스 추모주간'을 알리고 홈리스에 대한 관심과 차별 금지를 촉구하는 장미꽃이 놓여 있다. 장미꽃 한 송이마다 '오늘 당신과 만난 서울역 홈리스·무연고 사망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2022홈리스추모제기획단'은 이날부터 추모문화제가 열리는 12월 22일(동짓날)까지 열흘간을 '2022홈리스추모주간'으로 정했다. ⓒ 연합뉴스

 
올해 동짓날(12/22)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 역시 이날 홈리스추모제가 열릴 예정이다. 홈리스 상태(homelessness)에 머물다 외롭게 세상을 떠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자리다. 진정한 추모란 이러한 안타까운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는 일일 것이다.

사실 정확한 홈리스 사망자 수조차 알려진 바 없다. 정부가 공식 통계를 집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체 홈리스 규모가 감소 추세에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있긴 하지만 무연고사망자를 위해 치러지는 공영장례 횟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문제적 현실을 방증하고 있다.

늘어나는 무연고사망자... 코로나 시대의 홈리스, 건강불평등 최대피해자

홈리스는 사회경제적 박탈과 배제로 인해 적절한 주거공간을 상실한 상태이자 빈곤의 극단적 형태로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하다는 것은 각종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능력이 부족해진다는 사실을 뜻한다. 홈리스 상태는 무엇보다 죽음의 위험 앞에 극도로 취약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홈리스 상태에서는 치명적인 사고나 신체적, 성적 폭행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항상 불안함과 긴장감 속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회적 관계의 단절로 인한 소외감을 경험한다. 여기에 더해지는 사회적 낙인과 차별은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우울과 절망, 무력감을 심화시킨다. 이는 높은 자살 위험성으로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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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홈리스의 출입을 막기 위해 철선을 두른 벤치 2022년 12월 2일, 서울 용산우체국 앞 벤치. 평소 거리홈리스 2~3명이 이 벤치를 이용해오자 출입을 막는 철선을 둘렀다. ⓒ 홈리스행동

 
보편적 인권의 측면에서 볼 때 이는 심각한 건강권 침해에 해당한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권리와 건강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세계인권선언'의 '사회권 규약'(제12조1항)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도달 가능한 최고수준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향유할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받아야 한다. 

헌법에도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제35조1항)와 함께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제36조3)고 명시되어 있다. '보건의료기본법'(제10조1항) 역시 모든 국민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규정한다. 

이러한 법적 보호 대상에서 홈리스 역시 예외일 수 없다. 국가는 홈리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킬 책임이 있다. 즉, 홈리스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두터운 사회안전망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국가에 부과된 당연한 책무인 것이다. 


부실한 의료보장제도가 만든 홈리스의 '때 이른' 죽음

국가는 이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을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오래전 통계(2009년)지만 홈리스의 사망률이 비(非)홈리스의 사망률에 비해 두 배가 넘는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아마 이조차 대상자 누락 등 분석 자료의 한계로 인해 과소추정되었을 것이다. 국외 연구결과에 따르면 홈리스의 사망률이 3~4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관련자료 보기).

지난 2020년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의 사망 원인을 분석한 결과, '원인 미상'이 1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인구집단의 첫 번째 사망원인이 암인 것과는 다른 결과다. 사망하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 발견되어 사인을 밝히기 어려웠기 때문일 수 있지만, 또는 진단에 참고할 만한, 평소에 치료받은 기록이 없는 까닭일 수도 있다.

같은 분석결과에 따르면, 홈리스의 사망원인으로 특정된 질병종류 가운데 간질환과 호흡기 결핵 비중이 전국평균보다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암이나 심혈관질환보다 상대적으로 예방 가능한 사망요인들에 해당한다. 제때 적절한 의학적 치료와 관리가 이뤄졌다면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라는 말이다. 

물론 혹한(저체온증), 폭염(일사병)과 같은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이나 자살, 사고사 등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의료적 치료만으로 부족하다. 살 곳과 일정소득 등 정책이 동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망원인 분석결과는 홈리스 초과사망의 상당 부분을 충분한 양질의 의료보장으로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홈리스들의 초과사망 문제는 국가를 향해 제출된 고발장과 같다. 법에 규정된 건강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건강보장이 의료보장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의료가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는 유력한 수단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국가는 의료보장의 부실함 탓에 발생한 모든 이들의 '때 이른' 죽음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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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기 홈리스에 대한 긴급구제 신청 기자회견 2021년 1월 11일, 영하 15도를 밑도는 한파가 계속되자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주거지원을 중심으로 한 혹한기대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신청서를 접수하였다. ⓒ 홈리스행동


현재 홈리스 의료보장제도는 매우 차별적이고 제한적이다. 한국의 공적 의료보장체계는 국민 다수가 가입한 건강보험제도(97%)와 함께 빈곤층을 위한 공공부조의 일환인 의료급여제도(3%)로 이원화되어 있다. 언뜻 볼 때 홈리스라면 누구나 의료급여 수급자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홈리스 사각지대로 내모는 제도적 허점, '노숙인다움'을 입증하라?

홈리스는 오랜 기간 의료보장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었다. 2011년 일명'노숙인복지법'이 제정된 이후 비로소 의료급여 대상에 포함될 수 있었다. 하지만 홈리스 모두에게 수급권이 부여된 것은 아니다. 정부는 홈리스 중에서도 "보건복지부장관이 의료급여가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람"으로 대상자를 제한하고 있다. 

문제는 이 '인정'의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는 것이다. 선정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노숙인복지법'에 정해놓은 "노숙인 등"의 요건을 충족하는 기간이 3개월 이상 지속되어야 한다. 또 건강보험 미가입자이거나 6개월 이상 보험료를 체납한 상태여야 한다. 이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노숙인복지시설(노숙인자활시설, 노숙인일시보호시설)에 입소해야만 신청할 수 있고, 퇴소 시에는 바로 급여가 중지된다. 

설사 의료급여 신청의 '좁은 관문'을 통과하더라도 문제는 계속된다. 의료급여 역시 보장성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항목은 본인부담금이 없거나 적은 편이지만, 각종 비급여 의료서비스를 비롯해 간병비나 교통비 등 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장이 없다.

이러한 까다로운 조건과 절차는 홈리스가 '노숙인 의료급여 1종' 수급권을 취득하고 유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제도적 장벽으로 작동한다. 스스로 '노숙인다움'을 입증하라고 강요하는 장치와 같다. 그 결과 전체 홈리스 가운데 의료급여 수급자 비율은 매우 낮은 실정이다. 이마저도 해마다 줄어드는 형국으로 2021년 기준, 전체 271명에 불과하다('2021년 의료급여 통계연보').

현 제도는 거리의 홈리스들에게 특히 위협적이다. '2021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거리홈리스 중 '몸이 아플 때 병원에 가지 않고 참는' 미충족의료 경험자들은 37.5%로 나타났다. 

허점 많은 홈리스 의료보장, 전국에 딱 73개... 아파도 참을 수밖에 없다

단지 경제적 부담만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노숙인 의료급여 1종 수급자는 '노숙인진료시설 지정제도'에 따라 정부와 지자체가 지정한 의료기관만 이용해야 한다. 현재 노숙인 진료시설은 보건(지)소나 요양병원을 제외하면 전국 73개소(2021년)에 불과하다. 서울시의 지원사업 역시 지정된 의료기관에 국한된다.

그 결과 근처에 병원이 있어도, 당사자가 아픈 몸을 끌고 먼 거리를 이동해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현실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지난 4월 27일 <한겨레>에도 몸이 아픈 홈리스 박재혼씨가 거리가 먼 지정병원을 찾아가는 내용이 실렸다.

병원이 있긴 있는데, 너무 멀리 있다. 이는 홈리스들의 의료이용을 어렵게 해 건강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의료보장의 기본 취지에 반하는 불합리한 제도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진료거부를 금지한 '당연지정제' 덕분에 거의 모든 의료기관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건강보험 가입자나 여타 의료급여 수급자와 대조되는 차별적 조치라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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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 폐지 일인 시위 2022년 11월 3일, 서울역 앞에서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의 문제를 알리고 폐지를 요구하는 일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아랫마을홈리스야학' 학생 ⓒ 홈리스행동

   
이러한 차별은 단지 차별로 그치지 않는다. 그동안 전세계 많은 연구를 통해 '인지된 차별감'이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관련 연구). 예컨대 이는 하나의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여 고혈압과 당뇨병 위험을 높인다. 또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과도한 흡연, 폭음과 같은 건강위험행동을 유발해 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다.

즉, 홈리스에 대한 차별과 낙인은 그 자체로 건강위험요인으로 이들의 피부 아래로 파고들어 건강을 파괴한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 자신을 둘러싼 일상 공간 속에서 여러 유무형의 혐오와 차별을 경험하고 있는 이들에게 제도적 지원이라는 명분 아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는 꼴이다. 

차별적인 '노숙인진료시설 지정제도' 폐지해야

지난해 정부는 5년 만에 이뤄진 전국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제2차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서 "건강권 보장을 위한 의료지원"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정작 지금의 차별적이고 제한적인 제도의 틀을 바꾸겠다는 계획은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홈리스의 건강보호를 위해서는 다른 사회구성원과 동일한 수준의 의료접근성을 보장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건강문제를 발생시키는 홈리스 상태로 인해 그만큼 더 큰 의료필요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시혜적 관점과 열등처우의 원칙을 고집하는 가운데 양적, 질적으로 열등한 의료서비스만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모든 시민이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는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공리에 동의할 수 있다면 의료라는 가치재는 '필요'의 원칙에 따라 분배되어야 한다. 즉, 더 큰 필요를 가진 홈리스에게 더 좋은 의료가 제공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진료시설 지정제도 폐지와 함께 홈리스 모두에게 조건 없이 의료급여 수급권을 부여해야 한다. 

정부는 이렇게 제도적 장벽을 허물 경우 책임의식 부재에 따른 무임승차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레 염려할지 모르나, 이는 홈리스의 현실에 공감하지 못하는 무지한 발상일 뿐이다. '무(無)기여'가 문제라고 한다면 오히려 빈곤과 건강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도록 더욱 의료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이 타당하다. 또 의료급여 대상자 확대는 홈리스뿐 아니라 의료보장의 사각지대에 있는 수많은 잠재적 홈리스들까지 포괄함으로써 홈리스 예방에 기여할 수 있다.

홈리스의 고통을 외면하는 정부를 향해 정치적이고 윤리적 책임을 물으며 제도변화를 촉구해야 한다. 이것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료 시민을 위한 사회적 연대임과 동시에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지금의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누구나 불운이 겹치면 홈리스 상태가 될 수 있다. 이때 실효성 있는 의료안전망은 적어도 건강문제와 의료비 때문에 홈리스화되는 경우를 방지할 수 있고, 또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적 뒷받침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노숙인 진료지설 지정제도 폐지는 모두를 위한 보편적 의료보장체계를 만드는 길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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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홈리스추모제 포스터 2022년 12월 22일, 서울역 광장에서 '2022홈리스추모제'가 열린다. ⓒ 홈리스행동

 
덧붙이는 글 글쓴이 정성식씨는 (사)시민건강연구소 박사후연구원입니다. 시민건강연구소는 모두의 건강권 실현을 꿈꾸는 연구조직이자 비영리단체입니다.
#홈리스추모제 #차별 #홈리스 #노숙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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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행동은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약칭,노실사)'에서 전환, 2010년 출범한 단체입니다. 홈리스행동에서는 노숙,쪽방 등 홈리스 상태에 처한 이들과 함께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인권지킴이, 미디어매체활동 등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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