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 정진·찬진과 함께 (1930년)
독립기념관
고려 인삼 판매하며 기부 활동 참여
흥사단 입단 당시 문일민은 고려인삼을 판매하는 고려물산공사(高麗物産公司)에서 일하고 있었다.
인삼 판매는 당시 상하이 지역 한인들의 주요 생계수단 중 하나였다. 한국의 특산품이었던 고려인삼은 중국에서 죽은 사람들도 살린다는 영약(靈藥)·불로초(不老草) 등으로 불리며 기호품으로 자리잡았다.
이에 따라 상하이 지역 한인들 중에는 생활비 혹은 학비 마련을 위해 인삼 장사에 뛰어드는 이들이 많았다. 독립운동가들 중에는 인삼 판매를 통해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는 이들도 있었다.
문일민 역시 생계 유지 및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인삼 장사에 뛰어들었던 것 같다. 문일민은 1931년 고려물산공사 사장까지 역임했다. 그가 흥사단에서 요구하는 각종 의무금·기부금·고본금·저축금 등을 납부할 수 있었던 것도 인삼 장사를 통해 벌어들인 수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문일민은 국내에서 벌어지는 성금모금운동에도 적극 동참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충무공 이순신 유적 보존을 위한 성금 기부를 들 수 있다.
1931년 5월 충청남도 아산에 위치한 충무공 이순신의 묘소와 위토(位土: 제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경작하는 땅) 일대가 빚 때문에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당시 <동아일보>에 실린 정인보의 사설을 통해 이 소식이 알려지자 국내외 각지에서 성금이 답지했다. 총인원 2만여 명, 단체 차원에서는 4백여 단체가 자발적으로 성금 모집에 동참, 총 1만 6021원 30전의 성금이 모였다. 모금운동이 시작된 지 한 달 만에 빚을 모두 청산하고, 남은 돈으로 사당인 현충사도 대대적으로 중건할 수 있었다.
당시 기부자 명단에 '상하이 샤페이로(霞飛路) 1014 롱내 30호'를 주소지로 한 기부자들이 등장한다. 안창호, 송병조, 문일민, 차리석, 구익균, 장덕로 등 모두 원동위원부 멤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