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조한나씨의 마지막 가족 여행 때 사진.
유족 제공
한나씨의 꿈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모델, 다른 하나는 부자. 고등학생 때부터 모델로 활동한 한나씨는 대학도 모델학과를 졸업해 차근차근 꿈을 향해 나아갔다.
지난해 초 한나씨는 엄마를 위해 작은 카페를 차리기도 했다. 엄마의 힘든 직업이 늘 마음에 걸렸던 한나씨였다. 딸이 부자가 되려는 이유는 엄마의 행복 때문이었다. 한나씨의 첫 창업 도전은 "좋은 인생 경험"으로 마무리됐지만 엄마는 카페 이름, 간판 글씨체, 소파 색깔, 커피 종류 등을 꼼꼼히 챙기던 딸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딸은 엄마에게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펜션을 차리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엄마와 함께 펜션을 운영하며 즐겁게 살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때마다 엄마는 "한나가 좋아하는 강아지도 여러 마리 키우자"고 미소로 맞장구쳤다. "10년만 더 열심히 일해 돈 많이 벌어 펜션 차리자"던 두 사람의 약속은 이제 엄마의 가슴에만 남게 됐다.
물음표
띵동. 10월 30일 아침, 초인종이 울렸다. 인터폰에 보이는 경찰 두 명. TV 리모컨을 막 쥐었던 엄마는 곧장 문을 열었다.
얼마 전부터 불면증에 시달리던 엄마는 밤엔 TV를 잘 켜지 않았다. 전날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이 왜 우리 집에 왔지?' 간밤 이태원에서 벌어진 일을 알지 못했던 엄마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맴돌았다. 지구대 소속 경찰 두 명은 이내 경찰서 형사와 통화하라며 전화기를 건넸다.
"조한나씨와 어떤 관계이시죠?"
"제 딸인데요. 제가 엄마입니다."
"침착하게 들으세요."
침착할 수 없었다. 통화는 이어졌지만 엄마의 기억에서 그 뒤 주고받은 이야기는 사라지고 없다. 거실 바닥에 뒹굴며 "아니야"를 외치던 모습. 집 밖으로 뛰쳐나가 황급히 택시를 잡던 모습. 다리가 풀려 병원 입구에 주저앉았던 모습. 휠체어에 탄 채 영안실 앞에서 정신을 잃었던 모습. 이러한 장면만 엄마의 기억에 드문드문 남아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이 든 엄마는 영안실에 들어섰다. 이마까지 덮인 흰 천 사이로 머리카락만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엄마는 딸을 알아봤다. "한나야, 왜 거기 누워 있어?" 목 놓아 외치고 아무리 물어도 대답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경찰은 한나씨 오빠에게 "부검할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오빠는 "무슨 부검이냐"며 거절했다. 엄마의 바람은 한시라도 빨리 한나씨를 데리고 이곳을 떠나는 것이었다. 집에서 한참 떨어진 이곳에 딸을 더 두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경찰은 딸을 데려가려면 "결재가 나야 한다"고 했다. 심지어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엔 그날 오후 11시께 딸을 옮길 수 있었지만 엄마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경찰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대체 무슨 결재를 기다려야 한다는 건지, 그게 왜 일주일에서 한 달이나 걸린다고 한 건지, 그 사이에 우리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했을지... 그땐 제가 제정신이 아니어서 (경찰의 말에) 되물어야 한다는 생각을 못 했는데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죠."
의문 그리고 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