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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동은 어쩌다 남서울 차이나타운이 되었을까?

정체성을 지켜내려는 화교의 최전선... 다름을 인정하며 명소로 키울 방안 모색해야

등록 2023.01.29 15:39수정 2023.01.2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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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삶의 ‘흔적’이 쌓인 작은 공간조직이 인접한 그것과 섞이면서 골목과 마을이 되고, 이들이 모이고 쌓여 도시 공동체가 된다. 수려하고 과시적인 곳보다는, 삶이 꿈틀거리는 골목이 더 아름답다 믿는다. 이런 흔적이 많은 도시를 더 좋아한다. 우리 도시 곳곳에 남겨진 삶의 흔적을 찾아보려 한다. 그곳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기쁘게 만나보려 한다. [기자말]
지하철역 밖으로 나오니, 낯선 말소리가 먼저다. 언어가 '사회집단을 드러내는 관습체계'이니 이 공간은 분명 다른 사회집단이란 표징이다. 곳곳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말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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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동 차이나타운 길 끝이 지하철 7호선 대림역. 낯선 간자체 간판이 차이나타운임을 보이고 있다. ⓒ 이영천

 
큰길에서 작은 길로 꺾어 돌자, 몇 걸음 만에 확연한 차이가 눈에 들어온다. 즐비한 간자체 간판이 차이나타운임을 웅변한다. 공기와 냄새가 다르다. 낯선 언어만큼이나 음식도 낯설다. 중국 음식 특유의 향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다. 그들 풍토와 문화, 전통이 대림동 길거리에서 짙은 향으로 조리되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냄새에 차이나타운 한가운데임을 실감한다. 이들은 누구이며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까.

길가 좁은 골목에 들어서니 구인 알림판 몇이 서 있다. 일할 장소와 일당, 비자 요건이 적혀 있다. 기간은 며칠에서 길면 한 달 남짓이다. 이 공간 속 조선족 동포와 화교가 살아내는 삶의 단면이, 알림판 작은 글씨로 늘어서 있었다.

차이나타운

쿨리(Coolie)였다. 반노예적 삶을 살아가는 중국인으로, 이들이 임오군란 때 인천에 주둔한 자국 군대 뒷바라지 목적으로 한반도에 처음 발 딛는다. 2년 후 4천여 평 조계지를 인천에 설치한 게 한반도 차이나타운 모태다. 화교는 특유의 장사수완과 근면함으로 일제강점기 막강한 경제력을 구축한다.

이들이 곤궁에 처한 건 정작 해방 이후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으로 무역이 끊기고, 이주 억제로 인구가 정체한다. 한국전쟁 중 이승만은 정책으로 화교를 차별한다. '창고봉쇄령'으로 화교 무역상이 타격을 입는다. 중국 음식점에 차별적 세율을 적용하고, 음식값 인상을 통제했다.

박정희는 가혹했다. 1961년 '외국인 토지 소유 금지법'은 전적으로 화교를 겨냥한 법이었다. 화교는 정부 승인을 얻어야 토지 소유가 가능했다. 1970년 '외국인 토지 취득 및 관리에 관한 법'에 따라 1가구 1주택에 1점포만 허용되고 주택은 200평 이하, 점포는 50평 이하로 제한받는다. 논밭이나 임야 취득은 불가능했으며 취득한 토지와 건물은 임대할 수도 없었다.

외국인 거류 제도에 의해서도 고통받는다. 영주권 제도가 없는 대한민국에서 화교는 '외국인 출입국관리법'을 따라야 했다. 거주자와 비거주자로 분류되고, 거주자는 2년마다 비자를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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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차이나타운 인천 차이나타운의 스카이 휠.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 뒷바라지 목적으로 산둥반도 쿨리가 이 땅에 들어 오면서 차이나타운이 시작된다.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음식업에서도 제한과 차별을 받는다. 이를 견디지 못하고 수많은 화교가 미국, 호주, 대만 등지로 이주하여 인구가 급감한다. 1970년대 중국 음식점이 1/4로 감소한다. 한때 10여만 명이던 화교가 1970년대 말 2만 명으로 줄어든다.

세계적 냉전체제 속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존재는 화교들에게 족쇄였다. 중화민국을 조국이라 내세워야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냉전이 해체되는 1990년대 초까지 화교의 삶은 춥고 어두운 응달이었다.

1992년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가 전환점이었다. 조선족과 결혼 등 간헐적 교류에서 외환위기를 겪고 1990년대 말 취한 유화적 제도로 화교 유입이 급증한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무역량의 폭발적인 증가가 주요 요인이었다.

벌집에서

화교 유입 본격화로 도시공간도 변화를 맞는다. 구로공단이 남동, 반월, 시화공단으로 대거 이전하자 노동자 숙소이던 벌집이 텅 빈다. 이 공간을 조선족 동포가 채우고 뒤이어 화교가 스며든다. 값싼 임대료 때문이다. 가리봉동과 구로동, 대림동 등 지하철 7호선을 따라 넓은 지역을 망라했다.

주변 재래시장으로 화교 상인이 파고든다. 가격경쟁력을 갖춘 중국산 물품이 보따리상을 통해 대거 유입된다. 공산품은 물론 농수산물까지 전방위적이다. 대표적 사례로 가리봉시장 주변이 이들 터전으로 변한다. 축소된 중국이 시장은 물론 주변 곳곳으로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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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시장 초기 차이나타운을 형성한 가리봉시장 옌벤거리. 구로공단 노동자 숙소이던 벌집에 조선족 동포와 화교가 자리 잡아 공간 형성이 시작되었다. ⓒ 이영천

 
식품, 의류, 잡화와 음식점을 가리지 않는다. 이주해 온 중국인들을 주 고객으로 하는 환전소와 국제전화가 가능한 전화방, 체류 관련 행정사무소 등 특이한 기능도 함께다. 가리봉시장과 우마길은 지금 '옌벤 거리'라 부르며 진한 흔적이 남겨 두었다.

도시적 삶은 지대(rent)에 좌우된다. 이는 어떤 경제체제에서건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화폐로 치환된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주택은 주거 양태에 따라 지대가 변한다. 구로공단 제조업이 성업할 당시 이곳 지대는 벌집이 좌우했다. 산업구조가 변하던 일시적 공백기에, 그 공간을 조선족 동포와 화교가 채워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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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의 변화 가리봉시장 인근에 남아 있는 벌집과 바로 접한 필지에 세워진 다세대주택. 주거 양태 변화로 벌집에 살던 다수 화교가 대림동으로 이전하였다. ⓒ 이영천

 
구로가 디지털산업단지로 변모한 2000년대, 조선족 동포와 화교가 차지한 공간도 변화를 맞는다. 벌집이 아파트단지나 4~5층 다세대로 바뀐 것이다. 주거 양태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는 조선족 동포나 화교에게 큰 부담이었다. 뒤이어 공간 천이가 일어난다.

가리봉동 등에서 이주가 일어난다. 상대적으로 개발이 미흡해 지대가 싼 대림2동으로 몰려드는 역설이 만들어진다. 2000년대 후반에 이르러 대림동에 하나의 배타적 공간을 형성한다. 가리봉시장과 함께 화교가 자리 잡은 대림중앙시장이 중심이었다.

확산하는 공간

차이나타운은 변화 중이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최근 화교 감소가 있었으나, 일시적 현상이다. 중국이 빗장을 열면 엄청난 이동과 교역이 다시 불붙을 것이다. 시간문제일 뿐이다. 대림중앙시장을 중심으로 확산 중인 차이나타운은 따라서 그 세력이 더 넓어지고 강해질 개연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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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중앙시장 대림동 차이나타운 탄생지 역할을 한 대림중앙시장. 시장 입구와 잇닿은 긴 길거리로 차이나타운은 계속 확산 중이다. ⓒ 이영천

 
차이나타운은 비교적 균일한 토지이용을 보인다. 생산에 기반을 둔 공간이 아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창고로부터 가져온 물품을 취급하는 특성을 가지며, 한국인 상점과 보완적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생필품은 한국인 상점에 의존한다. 따라서 그들의 특색을 가장 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음식점과 주점이 다수를 차지한다. 음식이 문화를 나타내는 즉자적 상품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국 생활양식과 특색이 가미된 소비기능이 공간을 구성한다.

따라서 배타적이다. 이를 간판에서도 느낄 수 있다. 한자를 번자체로 배운 세대도 간자체 간판은 쉬이 판독해 내지 못한다. 한글로 부기한 내용도 불친절(?)하다. 진열대나 사진을 보아야만 뭘 취급하는지 겨우 알아볼 수 있다.

이는 차이나타운의 세계적 특성이기도 하다. 문자나 언어는 타국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방인으로서, 정체성을 지켜내는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한 공간에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 대를 이어 생을 영위해야 한다면, 당연한 현상이다. 정체성을 지켜내려는 화교 최전선으로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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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산하는 공간 대림중앙시장에서 구로동 방향으로 확산하는 차이나타운. 중국이 코로나19 빗장을 풀면 공간 확산은 더 가속화 할 것이다. ⓒ 이영천

 
중국인 디아스포라다. 이들이 남서울의 취약한 틈을 파고들어 자생하였다. 이 공간에서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개연성은 농후하다. 도시정책을 뛰어넘어, 더 자라날 공간 특성을 얼마나 너그러이 포용해내는가로 귀결될 것이다. 그게 공간의 온전한 변천을 담보하는 첩경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차이나타운의 특성을 남서울 명소로 키워갈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지혜가 필요하다. 같이 살아감은 그런 일이다.

편견

2000년대 초까지 우린 중국을 얕보는 경향이 강했다. 지금은 어떤가? 예전 중국을 보듯 이곳을 바라보는 시선엔 아직도 편견이 가득하다. 거기에 차별도 가해진다. 폭력이다. 그들과 문화는 물론 인식과 철학도 다르다. 서로의 '다름'에 우린 무척 인색하다. 다름을 인정하며 공존하는 지혜를 발휘할 순 없을까?

대림동 차이나타운을 소재로 그려낸 영화와 드라마 속 모습은 대체로 살벌하고 어둡다. 범죄조직 온상처럼 그리는 게 다반사다. 예전 전라도 출신에게 맡겨지던 역할이 조선족 동포나 중국인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표현의 자유를 탓하는 게 아니다. 차이나타운이라는 공간조직을 바라보는 시선을 말하는 거다. '사람 사는 곳 어디나 범죄가 있다'는 명제가 옳다면, 이곳도 사람 사는 공간 중 하나일 뿐이다. 몇 년 전 통계는 오히려 이곳 중대범죄 비율이 다른 곳보다 낮은 수치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차이나타운은 동남아시아와 유럽, 미국 등 세계 유수 도시에 존재한다. 150여 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 시간이 만들어낸 공간이다. 초기의 극심한 차별을 이겨내고 LA 차이나타운 등 몇몇은 유명 관광지가 되어, 수많은 관광객이 쇼핑과 문화를 즐긴다. 중국 전통문화는 물론 동서가 융합한 특이한 문명을 체험한다.

스스로 일궈낸 대림동 차이나타운은 우리 안에 스며든 작은 중국이다. 여느 차이나타운처럼 솟을삼문이 없어도 좋다. 그 힘으로 공존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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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레 타인과 소통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소통하는 그런 일들을 찾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보다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서로 교감하면서,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풍성해지는 삶을 같이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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