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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무정차, 진짜 '시민' 위한 선택인가

[주장] 이태원과 삼각지에서의 판단 차이, 단지 우연일까

등록 2023.01.23 14:10수정 2023.01.23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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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공동대표가 19일 오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장애인 권리예산을 촉구하는 지하철행동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지난 20일, 삼각지역과 오이도역에서 지하철은 한참 동안 서지 않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의 지하철 탑승 시도를 이유로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무정차를 결정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엄정 대처' 발언 이후 지난해 12월 8일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의 협의가 있었고, 이후 서울교통공사는 전장연의 지하철 탑승 시도에 대해 무정차 카드를 수시로 꺼내 들고 있다. 지난 2일에는 무정차를 안내하는 재난문자까지 발송했다.

이태원에서는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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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이정민 부대표가 20일 오전 서울역앞에서 열린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독립적 조사기구 설치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서울교통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이태원 참사 시점까지 5년간 서울시와 서울경찰청, 외부기관 등에서 총 19건의 무정차 요청이 있었다. 불꽃축제 4회와 제야의종 행사 2회 등 교통혼잡 및 인파사고 우려를 이유로 무정차를 요청받은 건 6건뿐이었다. 코로나 감염확산을 막기 위한 요청이 12건이었는데 이 중 11건이 집회통제에 집중되어 있었다. 

2020년과 2021년 코로나 확산을 이유로 집회 개최를 반대하는 여론이 매우 거셌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21년 이후에는 대규모 집회도 아닌 집회에서나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집회조차도 정부나 시는 원천봉쇄 방침을 고집하면서 과도한 집회통제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집회통제를 위해서는 승객을 태우지 않겠다는 쉽지 않은 결정을 이렇게 선제적이고 광범위하게 이행하면서도, 지난해 10월 29일 참사가 있었던 이태원에서는 압사사고 방지를 위한 지하철 무정차가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

우선 서울경찰청과 서울시는 핼러윈에서의 안전사고 위험을 사전 인지하고 있었다. 국정조사 과정에서 경찰은 수년간 여러 차례 핼러윈 대책 문건을 작성했고 서울시와 공유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문건에는 압사 등 안전사고 우려가 명시되어 있다. 이미 서울시는 인파사고 우려를 이유로 제야의종 행사와 불꽃축제 무정차를 서울교통공사와 매년 협의해오고 있었으므로, 역시 인파사고가 우려되는 핼러윈에서의 무정차도 적극 고려했어야 했다. 


핼러윈에서의 무정차 요청 전례가 아예 없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지난 2020년 용산구청은 핼러윈데이 지하철 무정차를 요청한 바 있었으나 당일 승하차 인원이 적어 실제 시행하지는 않았다.

결정적으로 참사 사흘 전 지난해 10월 26일 이태원 상인연합회와 용산구청, 용산경찰서와 이태원역 측에서 참석한 핼러윈 대책 간담회에서 지하철 무정차 요청이 나왔다. 그런데도 용산구청과 용산경찰서 측은 공문 발송과 같은 공식적인 절차를 이행하지 않고 방기했고, 서울교통공사는 공문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정차 사전 요청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참사 당일 이태원역의 승하차 인원은 불꽃축제와 엇비슷하거나 넘어서기까지 했다. 불과 참사 20일 전 무정차가 시행되었던 서울불꽃축제(2022년 10월 8일)의 여의나루역 승하차인원은 시간당 1만 5473명이었다. 이태원역의 경우(2022년 10월 29일) 20~21시 사이 승하차 인원은 1만 7306명에 이르렀고 그 전후로도 시간당 1만 5000명 이상의 승하차인원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11건에 이르는 112신고, 역사 내외 CCTV로 확인되는 엄청난 인파에도 불구하고 어떤 유관기관도 무정차 조치를 위해 움직이지 않았다. 

경찰 측은 21시 38분 이태원파출소장이 이태원역장에게 전화로 무정차를 요청했다고 주장하나, 이태원역장은 무정차 요청이 아니라 출입구 유입승객 진입 통제라고 주장해 입장이 엇갈린다. 참사가 발발한 뒤 한 시간이 지난 후인 23시 10분께 (양측 모두가 인정하는) 무정차 요청이 들어갔지만, 서울교통공사는 귀가 승객을 태워야 한다며 무정차 운행을 거부한다. 결국 무정차는 이뤄지지 않았고, 서울교통공사와 서울경찰청의 책임회피를 위한 진실공방만 남았다. 

'안전사회'와 '치안사회'의 갈림길에 선 대한민국

사전에 위험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고, 사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고, 사전요청도 있었고, 당일에도 급박한 요청이 있었던 지하철 무정차가 끝내 이행되지 못하게 이끌어간 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반면 집회통제와 전장연의 지하철 탑승을 봉쇄하기 위한 지하철 무정차는 긴밀하고 용이하게 이뤄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실마리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의 국정조사 청문회 답변에서 엿볼 수 있다. 김광호 청장은 왜 과거 핼러윈에 배치되었던 안전관리를 위한 경찰력이 이번에 배치되지 못했느냐는 질의에 마약단속에 집중하느라 제대로 신경 쓰지 못했다고 답했다. 법무부의 마약 단속 계획과 서울경찰청의 '마약 올인' 사이의 관계와 관련해 법무부는 일절 자료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인파관리를 위해 출동했어야 할 기동대는 집회통제를 위해 집중적으로 배치됐고, 재난상황실 역할을 맡아야 할 용산구청 당직자들은 윤석열 대통령 비난전단을 제거하는데 동원됐다. 용산구청은 사전대비계획에서도 시민의 안전보다는 마약과 범죄통제에 초점이 맞춰졌다. 검찰은 참사로 희생된 이들에게 '마약부검'을 시도하면서 그들 나름의 가설을 무리하게 입증하려 들었다. 희생자의 마지막 존엄은 안중에 없었다.

대한민국 보수주의의 유구한 전통에 따라, 이 정부 역시 간첩, 노동쟁의, 강력범죄, 마약, 퇴폐적 문화의 범람 같은 것들을 주적으로 삼고자 했다. 이들의 세계관에서는 자유시장의 작동과 자산가와 기업가의 재산을 위협하는 것들로부터의 '안전'이야말로 국가가 최우선으로 수호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유시장의 작동과 자산가·기업가의 재산 축적 과정에서 희생되는 '안전'은 최대한 은폐되어야 한다. 

대가는 참혹하다. 정말로 치안력이 활용되어야 할 영역, 이를테면 노동현장에서의 만연한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법 위반 대책이나 인파관리를 위한 자원 배분은 최소화된다. 급기야 안전과 기본권을 위해 예산과 행정력을 요구하는 행위 자체가 위협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더 많은 예산은 증세 압력으로 이어져 우파의 감세드라이브를 좌절시키고 가진 이들의 비용부담을 더 늘릴 수도 있는 잠재적 불안요소이기 때문이다.

이태원과 삼각지에서의 무정차 판단의 현격한 차이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현실은 '안전국가'에 대한 '치안국가'의 우위다. 법과 원칙을 앞세워 무심하게 장애인들의 탑승을 거부하는 지하철 앞에서, 장애인이 리프트에서 떨어져 죽지 않을, 사회의 일원으로서 안전하게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몇십 년 미뤄져 왔다는 잔혹한 현실이 없는 사실처럼 취급된다. '집이건 시설이건 조용히 갇혀서 장애인답게 살라'고 강변하는 대한민국, 그렇게 평온해진 지하철은 얼마나 '안전'한 교통수단이라 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필자는 국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하철 무정차 #이태원 참사 #전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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