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경남MBC
한편 고민의 늪에서 허우적대다가 1월 초, 급기야 20년 만에 연기 스승님을 무작정 찾아 뵈었더니 도움이 될 거라며 추천해주신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도 보게 되었다.
경남 MBC에서 제작, 유튜브에서 입소문을 타고, 설날연휴에 MBC 전국방송으로까지 편성된 다큐멘터리. 18세에 한약사가 되어 60년간 '남성당한약방'을 운영하며 끊임없이 지역사회에 거액을 기부한 김장하 선생의 이야기다.
진행 방식이 좀 독특했는데, 기존 다큐멘터리와 달리 주인공인 김장하 선생이 단 한번도 카메라 정면에 자리잡고 얘기하질 않는다. 오히려 그 분을 취재하는 기자가 해당 의자에 앉아 줄곧 인터뷰를 당한다. 보통 그런 장면에서 기자는 뒤통수 3분의 1정도만 걸리는 오버컷이 대부분인데.
평소에도 자기 칭찬이 유도되는 질문이면, 아예 말문부터 닫아버린다니, 극도로 자신을 드러내기 꺼려하는 분을 전면 배치할 수도 없기에, 취재기자를 시작으로 그와 관련된 주변인들이 줄지어 빈 의자를 채운다. 끝까지 매끄러운 전개가 이어질까 싶었는데, 보다보니 2부작도 턱없이 부족했다.
한 사람을 취재하다 보면 거기서 또 다른 미담과 수혜자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계속 엮어져 나와 캐도캐도 끝이 없다. 그들의 증언에서 들려주는 김장하 선생의 사회와 개인에 대한 크고 작은 다양한 기부와 후원의 일화들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감동으로 생생하게 전해져 가히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였다.
한약방에 찾아온 아픈 이들의 돈을 허투루 쓸 수 없다며, 많은 이들에게 도로 베풀었다. 생색없이. 줬으면 그만이라고. 잠깐 마스크 벗으셨을 때 비로소 뵌 어르신의 평온한 얼굴, 소년같은 눈에서 느껴지는 온화한 인품이 화면 너머로 향기가 되어 품어져 나오는 듯했다.
방송 끝자락에 김장하 선생은 "산에 오를 때 하는 좋은 말이 있는데, 사부작 사부작, 꼼지락 꼼지락 그렇게 걸어가면 된다"고 말했다. 나만의 착각이겠지만, 혹시 앞에 앉아 있던 젊은 여자 PD가 나와 같은 고민을 안고 선생께 질문했나?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선생의 사부작 꼼지락 가란 말에 PD는 웃으며 "그건 할 수 있습니다!" 했다. 그러자 선생은 그럼 된 거라며 따라 웃으셨다.
닮고 싶지만 너무 자책하지는 말자
송골매처럼 멋지게 늙고 싶다, 김장하 선생같이 어른답게 늙고 싶다는 생각들. 서로 잘 되길 바라는 좋은 친구 하나 오래 두면 그냥 멋져지는 거고, 주어진 능력껏 행하고, 내세움 없이 베풀고 살면 어른에 다다르는 것을. 난 아직도 삶에 대한 심플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안달하고 있다.
스승님께 좋은 프로그램 소개해줘서 감사드린다 했더니, 60대를 넘어가는 당신께서도 요즈음 점점 힘들었는데, 이 다큐를 보며 반성하고 또 마음을 다지겠다 하셨다. 함께 방송을 지켜본 80대의 어머니도 아침 밥상을 내려다 보시며, 밥 먹는 것도 부끄럽다 반성하셨다. '그럴 것까진 없진 않냐', '김장하 선생과 엄마의 삶은 다르다' 해도 고개를 절래절래 하셨다.
40대, 50대, 60대, 70대, 80대... 중년을 훌쩍 넘기고도, 삶을 조금씩 정리해 나가는 연세임에도, 걸어온 삶에 대해 여전히 반성하고, 앞날에 대한 막막한 고민의 끝에 이르다, 결국 또다시 출발선상에 자신을 세운다.
어디로 어떻게 비행할지 알 수도 없고, 혹여 나보다 더 훌륭한 누군가 마주하더라도, 닮고 싶어도 닮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자책하지는 말기를. 우리, 지금까지도 아주 잘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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