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15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오희옥 애국지사가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이걸 가만히 보면 공통점이 있다. 뭐냐면, 주인공이 있다. 야당(현재 여당)에서 당시 대통령 행사나 국가기념식을 비난할 때 제일 많이 했던 말이, 대통령을 돋보이게 하려고 탁현민이 행사를 한다는 거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선택한 좋은 장면들에 어디 대통령이 있는가? 없다.
사람들이 좋은 기억을 갖는 행사일수록 그 행사의 주인공이 분명히 선명하게 따로 있다. 오희옥 애국지사, 울고 있던 유족, 대신 복귀 신고를 하는 참전용사 할아버지 등등. 그 행사의 진짜 주인공을 찾아내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보여주려고 했던 게 성공하게 했던 거다."
아이디어와 깡다구, 또는 소명
-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얻나.
"재수 없게 얘기하면, 아이디어는 타고 나는 것(웃음)."
이 부분에서 취재진과 탁 비서관은 모두 빵 터졌다. 그는 답변을 이어갔다.
"'재수 없게 얘기하면' 이걸 꼭 살려달라. 아이디어는, 나는 본질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본질에 대한 탐구. 거기 아니면 기댈 데가 없다."
또다른 에피소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김정은 양 정상이 평화의 집에서 나와 마지막 야외 환송 공연 자리에 앉자 탁 비서관은 모든 조명을 끄고 무려 15초 동안 고요한 암전 상태를 만들었다. 소리와 빛이 사라져야 비로소 들리는 '평화로운' 판문점의 풀벌레 소리, 바람 소리,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물론 남북 경호 담당 쪽에 미리 알렸다지만, 아무리 신박한 아이디어를 위해서라도 남과 북 정상과 경호원들이 즐비한 그곳에서 모든 불을 확 꺼버리는 건 깡다구라고 해야 할까?
- 아이디어를 얻는 것과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또 다르지 않는가. 남북정상회담 15초 암전의 경우, 아이디어는 좋은데 이것을 실제 하기는 정말...
"그래서 나는 소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한 직업인으로 바라보면, 야 이거 뭐하러 해, 아무도 모를 텐데, 이거 괜히 했다가 욕만 먹고 사고 나면 어떡해, 하지마 하지마, 이런단 말야. 그러나 소명으로 바라보면, 야 이게 진짜 평화 아냐? 이걸 보여줘야 되는 거 아냐? 이게 다른 어떤 말보다 중요한 거 아냐? 라는 쪽으로 기울게 돼 있다."
- 무슨 소명이 있었나.
"그때 전날 밤 마지막 리허설을 하는데 되게 헛헛함, 안타까움 같은 것이 생기더라. 아, 내가 이곳 판문점에서 몇 주를 고생하면서 영상 만들고 무대 만들고 프로그램 짜면서, 뭐 남북의 화해,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평화 그 새로운 여정, 뭐 오만 미사여구와 이야기들을 다 쏟아내는데, 그 모든 이야기들보다, 모든 소리가 다 멈추고 저쪽에서 우는 개구리 소리가 훨씬 더 평화롭게 느껴지는 거다. 어떤 음악보다, 어떤 말보다, 어떤 문자보다. 그러면 이걸 보여줘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거지. 그게 15초 암전의 배경이다. 물론 사람들이 그걸 그렇게 받아들였느냐, 그거는 전혀 다른 문제지만."
- 5년간 청와대 작업들을 짧게 자평한다면?
"모든 순간이 눈부셨고, 자부심이 넘쳤고, 명예로웠고, 그러나 죽을 때까지 다시 할 일은 없을 것이다."
- 정말?
"예. 난 확실하다. 다시는 내가 그런 역할 혹은 그런 자리, 그런 일종의 공적인 영역에서의 일은 하지 않을 거다. 이유가 있다. 또 하면 그만큼 못한다. 나는 너무 놀라운 기회를 잡았다. 내가 너무나 존경하는 대통령이 있었고, 내가 존경만 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나를 신뢰해줬고, 또 대통령을 좋아하고 정부를 신뢰해주는 다수의 국민들이 있었고, 또 홍범도 장군부터 시작해서 우리 근현대사의 어떤 전환기적 여러 사건들이 그 시기에 있었고.
그러니까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완벽한 조합 안에 내가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이걸 할 수 있었던 거다. 또 하면 이렇게 안된다. 이렇게 완벽하게 세팅이 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