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넨과 코듀로이로 만든 셔츠
최혜선
아이는 그 셔츠에 조끼를 덧입고 아이돌 언니들 사복패션 같다고 좋아했다. 어느새 자라서 내 옷을 같이 입는 걸 보면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렀나 싶어 빙그레 웃음을 짓다가 아이를 갓 출산한 시절로 타임슬립을 하곤 한다.
견디는 시간 속에서 배운 것
그 기억 속에는 빨간 원숭이 같던 아기를 방에 재워놓고 식탁 의자에 앉아 방금 나온 방문을 아득하게 쳐다보던 삼십대 초반의 내가 있다. 그때 나는 다시 저 방문을 열면 다 큰 아이가 누워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재워주지 않아도 되고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만 집에 두고 한나절 바람을 쐬고 와도 되는 나이의 아이로 자라 있었다면 좋겠다고.
나는 그런 생각을 이십대 초반에도 했었다. 대학 4학년 때 IMF가 터졌고 취업은 전에 없이 힘들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동안 취직을 하지 못했다. 서울에서 더 이상 버틸 돈도 명분도 없어서 고향 집으로 내려갔다.
매일 아침 집 근처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단순한 생활이었다. 대학을 다닌다고 하면 아무것도 설명할 필요가 없었던 시절이 끝나고 '요즘 뭐하니?'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시절이 온 것이었다.
그즈음 팔뚝에 이마를 얹고 낮잠을 청할 때면 '자고 일어나면 서른 다섯살이었으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소원을 빌며 잠들었다. 그러면 취직이든, 결혼이든 뭔가 결론이 나 있을것만 같아서였다.
어려운 부분은 다 건너뛰고 싶어했던 어린 나는 매일매일 바라던 어떤 기적도 만나지 못했다. 마침내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그 아이가 나와 같은 사이즈의 옷을 입게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저 하루하루가 흘렀을 뿐이다.
가만, 잠을 자고 일어나면 내게 일어나있길 바랐던 기적은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다 이루어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루하루 잠에서 깨어나 그날그날 주어진 일들을 해오는 사이 아이는 먹여주고 씻겨주지 않아도 자기를 돌볼 수 있을 만큼 컸다. 아이 걱정 없이 하루종일 일을 보고 와도 괜찮을 시기가 온 것이다. 어쩌면 기적은 뭔가를 염원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흘러가는 하루하루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 셔츠를 세 번째로 만들었던 것은 얼마 전 학교 축제에서 반별로 치어리딩 무대를 선보이는데 흰 셔츠를 입기로 했다고 해서였다. 치어리딩을 할 때 입을 거라 팔을 격렬하게 돌리며 움직여도 부대끼지 않을 디자인의 셔츠로 무엇이 좋을까 생각하다가 이 셔츠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