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동 가족귀국 이듬해인 1947년 20세 때의 김자동 회장과 부모님 김의한ㆍ정정화 여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아버지 김의한은 해방 후 6.25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북한에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에 참여하다가 운명하였다. 할아버지의 유해는 상하이 송경령능원에, 아버지는 평양 용궁동 재북인사 묘역에, 어머니는 대전 국립현충원에 묻혀서, 이들 가족은 사후에도 이산의 아픔을 겪고 있다. 김자동 선생은 아버지가 광복군의 조직훈련과장에 이어 정훈처 선전과장으로 재직할 때 열심히 도왔다. 할아버지·아버지·어머니에 이어 본인까지 3대에 걸쳐 독립운동을 한 것이다. 이같은 경우는 사례를 찾기 쉽지 않다.
이런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것인지, 두 딸과 맏사위가 8,90년대 노동운동에 참여하고 노조위원장을 맡았다. 한 집에서 노조위원장이 셋이나 나온 경우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자연은 이기적인 유전자를 지닌 생명체들의 거대한 생존투쟁의 장이다. 인간 역시 이기적인 유전자를 지닌 존재로서 공동체적 사회 안에서 상호 경쟁하는 관계를 형성한다."(매토 리들리, <이타적 유전자>) 그런데 간혹 이타적 인간도 나타난다. 인간사회 공동체가 유지되고 있는 바탕일 것이다. 이들 집안도 여기에 속한다고 할 것 같다.
오랫동안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지켜 본 김자동 선생은 '사무사(思無邪)'의 전형적 인품이었다. 공자가 시 300편을 모아 <시경(詩經)>에 나오는 이 글귀를 제목으로 삼았다. "마음 속의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는 뜻이 담긴다.
선생은 가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아픈 시대를 살아오면서도 얼굴은 언제가 온화하고, 정신은 맑았다. 매사에 욕심내지 않고, 정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인간의, 지식인의 본성을 착실하게 지키면서 사셨다. 얼굴에 나타난 부드럽고 자상하고 포근한 모습은 마음 속에 '사무사 정신'이 깃들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얼이 들어있는 굴'이라는 얼굴이 언제나 온화한 것은 '사무사'의 반영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