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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 하청노동자 파업이 북 지령? 이제 간첩으로 엮나"

경남 금속노조·조선하청지회 압수수색, 영장에 대우조선해양 파업 적시

등록 2023.02.23 15:31수정 2023.02.23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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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국가정보원이 23일 오전 민주노총 경남본부 내 금속노조 경남지부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다.

국가정보원이 23일 오전 민주노총 경남본부 내 금속노조 경남지부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다. ⓒ 윤성효

 
"'이대로 살 수 없다'라고 외치며 한국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투쟁을 간첩 조작 사건과 어떻게든 엮어보려는 속내가 너무 뻔히 들여다보여 개탄스럽다."

국가정보원·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남지부·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조선하청지회) 간부의 근무지와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하자,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이같이 비판했다.

국정원은 23일 창원에 있는 민주노총 경남본부 내 금속노조 경남지부 사무실, 거제에 있는 조선하청지회 사무실, 금속노조 경남지부·조선하청지회 간부 2명의 차량·자택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국정원은 간부 2명과 관련해 휴대전화 등 일부 물품을 압수했다.

민주노총 경남본부에 대해 수사당국이 압수수색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국정원의 압수수색 시도를 민주노총 간부·조합원들이 몸으로 막으면서 한때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이후 변호사가 입회하면서 압수수색이 진행됐다.

압수수색 영장에 따르면, 국정원은 간부 2명이 소위 '창원 간첩단 사건'과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창원 2명, 진주 1명, 서울 1명의 진보·민중단체 활동가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있다.

국정원이 이번에 진행한 압수수색은 지난해 여름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이 벌인 파업과 관련이 있다. 영장에는 지난해 6~7월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이 가입해 있는 금속노조 경남지부 조선하청지회가 벌인 파업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날 보수언론들은 "압수수색 대상 중 일부가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에 깊이 관여했던 것으로 전해졌고, 하청 파업을 주도한 조선하청지회에 조직원이 침투한 것 아닌지 의심해 수사 중이다"라고 보도했다.


또 "수사당국은 간부 등이 북한 공작원을 만난 제3자를 통해 북측의 지령을 받아 실행에 옮긴 혐의을 포착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라고 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조선하청지회 "이제는 간첩 조작인가"...경남본부 "탄압에는 항쟁"


조선하청지회는 이날 성명을 내 "불법 파업으로 매도하고 470억 손해배상 소송으로 겁박하더니 이제는 간첩 조작인가. 국가보안법까지 동원해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투쟁을 막으려는 윤석열 정부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오전 상황과 관련해 "국정원은 조선하청지회 간부가 사용하는 컴퓨터 등을 가져가겠다면서 경찰차 8대와 수십 명을 동원해 주변에 대대적으로 알리며 호들갑을 떨었다"고 했다.

이어 "그러나 간부가 노동조합 상근자가 아니라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로 일하고 있다는 기본 사실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압수수색을 진행한 국정원은 결국 1시간도 안 돼 빈손으로 돌아가야만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국정원의 존재를 대놓고 드러내며 노동조합에 대한 이같은 무리한 압수수색을 거듭하는 윤석열 정부의 의도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파업 관련 회사의 손해배상소송을 언급한 이들은 "윤석열 정부는 이제 간첩 조작 카드를 꺼내 들었다. 간첩 조작을 통해 마치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파업투쟁이 북한의 지령(?)에 따라 벌어진 것처럼 왜곡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철 지난 간첩 조작으로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투쟁을 막을 수 있는 시대는 오래전에 지났다. 생존의 벼랑 끝에서 내지르는 비명과 같은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투쟁을 간첩 조작과 엮는다고 막을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이날오전) 갑자기 대규모 경력과 요원을 앞세워 들이닥쳐서는, 압수수색 영장을 들이밀며 겁박하는 모양새를 우리는 이미 봤다"면서 "건물 주변에 대규모 경찰과 경찰버스로 에워싸 시민들에게 대단한 범죄 소탕이라도 하는 양 포장하는, 이미 지난 민주노총 압수수색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다. 민주노총에 '폭력'에 더해 '간첩'이라는 주홍글씨를 선명히 새기겠다는 의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규탄했다.

이들은 "합법적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 색깔론을 씌우려 말라. 낡은 국가보안법으로 우리의 투쟁을 옭아매려 하지 말라. 사상과 이념은 차이일 뿐이며, 반대와 억압의 대상일 수 없다"면서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가로막지 말라. 그런다고 우리의 저항과 투쟁을 누그러뜨릴 수 없다. 오히려 권력의 탄압, 체제의 억압에 맞선 투쟁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날 오전 민주노총 경남본부가 건물 앞에서 압수수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동안 국정원 직원이 동영상 촬영을 하다 발각돼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민주노총 경남본부 간부는 "기자가 맞느냐고 하자 국정원 직원이 맞다고 했다"고 전했다.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민간인 사찰'이라며 항의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 측은 "해당 직원은 부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했고, 압수물이 빠져나가는지 여부를 살폈다 한다"며 "당황해서 기자라고 말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a  국가정보원이 23일 오전 민주노총 경남본부를 압수수색한 가운데,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자 국정원 직원(원안)이 동영상 촬영하자 조합원한테 들켜 실랑이가 벌어졌다.

국가정보원이 23일 오전 민주노총 경남본부를 압수수색한 가운데,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자 국정원 직원(원안)이 동영상 촬영하자 조합원한테 들켜 실랑이가 벌어졌다. ⓒ 윤성효

  
a  국가정보원이 23일 오전 민주노총 경남본부를 압수수색한 가운데,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자 국정원 직원이 동영상 촬영하자 조합원한테 들켜 실랑이가 벌어졌다.

국가정보원이 23일 오전 민주노총 경남본부를 압수수색한 가운데,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자 국정원 직원이 동영상 촬영하자 조합원한테 들켜 실랑이가 벌어졌다. ⓒ 윤성효

 
a  국가정보원, 경찰이 2월 23일 아침 민주노총 경남본부 내 금속노조 경남지부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이면서 경찰이 배치되어 있다.

국가정보원, 경찰이 2월 23일 아침 민주노총 경남본부 내 금속노조 경남지부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이면서 경찰이 배치되어 있다. ⓒ 윤성효

  
a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23일 오전, 건물 앞에서 국가정보원의 압수수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23일 오전, 건물 앞에서 국가정보원의 압수수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윤성효

#국가정보원 #국가보안법 #압수수색 #민주노총 #금속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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