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을 안 찍어도, 우리 모두는 '다큐멘터리스트'

[활동가의 책장] <다큐의 기술>

등록 2023.03.09 11:10수정 2023.03.0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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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의 기술 | 김옥영 | 문학과지성사 | 2020 ⓒ 문학과지성사

   
"올해에는 브이로그(vlog)를 찍겠습니다."

아이쿠, 입이 또 제멋대로 움직였다. 호기로운 한마디가 고요한 활동가 생활에 파장을 일으켰다. 새해 사업 목록에 브이로그 기획을 올린 후, 복도에서 마주치는 동료마다 눈을 반짝이며 '기대된다'라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덕분에 사무실에서만 영상을 만들던 나는 브이로그를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나갔다.


짜놓은 연출 아래 촬영을 해본 적은 있지만 예측 불가한 현장 촬영은 처음이라 고민하던 찰나, 알고 지내던 다큐멘터리 감독님으로부터 <다큐의 기술>을 추천받았다. 대상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닌 '내가 보고 해석한' 그만큼을 전달하는 것이 다큐라는 저자의 말을 곱씹으며 카메라를 챙겼다.

첫 현장으로 10.29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에 갔다. 쏟아지는 아침잠을 이겨내며 분향소에 들러 분향하는 시민들에게 국화를 나누어주었고, 퇴근 후 다시 시청 광장으로 나가 촛불 추모제 현장을 영상에 담았다. 생면부지 타인에게 위로를 건넨 적은 있어도 나의 시간을 내어 함께 한 적은 없었다. 함께하는 그 시간 동안 겪은 현장을 나의 시선으로 해석하기 위해 끊임없이 관찰했다. 보고 또 보았다.

얇은 방석 하나로 버티던 엉덩이가 시려질 무렵, 초를 나누어주는 동료의 손에서 타인의 일과 자기 일을 구분 짓지 않는 무경계가, 퇴근 후 헐레벌떡 뛰어와 노래하는 시민의 목소리에서 분노와 공감이 보이기 시작했다. 차가운 바닥으로부터 내 엉덩이를 보호하는 것이 더 시급했던 나는, 세상을 해석하기 위해 타인의 자리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연임을 알게 되었다. 저자의 말처럼 다큐는 기술 이전에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다큐멘터리스트는 누구일까? 저자는 '질문하는 자'라고 정의 내린다. 하면, 영상을 찍든 찍지 않든 우리 모두가 다큐멘터리스트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참사 이후 이태원과 서울 광장으로 나왔던 당신에게 묻고 싶다. 추모 현장에 당신을 이끌었던 건 무엇인가? 당신은 어떤 질문을 품고 그곳에 있었나?

당신의 대답이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글 안소영 미디어홍보팀 활동가.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3년 3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다큐의 기술 - 다큐멘터리스트는 무엇을 발견하고 어떻게 설득하는가

김옥영 (지은이),
문학과지성사, 2020


#다큐멘터리 #다큐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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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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