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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군 능주, 정율성의 추억이 서린 곳

조국인 한국에서는 낯설지만 13억 중국인들이 추앙하는 음악가

등록 2023.03.13 09:34수정 2023.03.1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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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율성 초상 화순군 능주초등학교 후문에 들어서면 보인다. 4층 건물 벽면에 그렸다. ⓒ 김재근

 
정율성, 오천만 한국인에겐 낯설지만 십삼억 중국인에겐 추앙(推仰)의 대상이다. 하얼빈에는 그를 기리는 기념관도 있다.

"전진 전진 전진 / 태양을 따라서 나간다 조국의 대지를 밟으며 / 민족의 희망을 지녔다 우린 무적 필승불패 대오! / 우리는 영용한 전사 우리는 인민의 군대 / 인민 위해 민주 위해 / 윈쑤들을 모조리 쓸어 물리치고 모택동 기치 높이 날리자 / 아, 나팔소리 울린다 혁명의 노래 드높다 / 동무들아 발을 맞춰 싸움터로 가자 / 동무들아 발을 맞춰 국경초소로 가자 / 전진 전진 태양을 따라서 나간다 / 최후 승리 위해 전국 해방 위해"


중화인민공화국의 공식 군가인 '중국인민해방군 행진곡' 가사다. 조선 출신 작곡가 '정율성'이 곡을 썼고, 중국 시인 '궁무'가 노랫말을 붙였다,

원래 제목은 '팔로군 행진곡(八路軍進行曲)'으로 1939년 가을 옌안시에서 만들어졌다. 제2차 국공내전 때는 '해방군 행진곡'으로 불렸고, 1965년에 지금의 이름인 "중국인민해방군행진곡"으로 바꾸었다. 1988년는 중국인민해방군 정식 군가가 되었다.

정율성(鄭律成, 1914~1976)은 지금의 광주광역시 양림동에서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명은 부은(富恩)이었다. 3세에 지금의 전남도 화순군 능주로 왔다. 8세에 능주공립 보통학교(현 능주초등학교)에 입학하여 2년을 다녔다. 10세에 다시 광주로 갔다. 광주 숭일소학교를 졸업하고 전주 신흥중학교에 입학했다.

그의 형들(효룡, 인제, 의은)은 물론 누이 봉은의 남편 박건웅도 항일 투쟁을 벌인 독립투사였다. 19세인 1933년에 중퇴하고 셋째 형 정의은(鄭義恩)을 따라 중국으로 갔다. 조선 의열단과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옌안의 루쉰 예술학교 음악학부에서 음악을 배웠다. 이때 율성으로 개명하였다.

해방 후 북한으로 갔다. 6·25전쟁 중 중국으로 갔다. 중국 국적을 취득했고 음악 활동을 계속했다. 문화혁명 때 고초를 겪기도 했다. 1976년 향년 62세로 베이징 근교에서 사망하였다(위키백과와 네이버 백과사전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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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율성거리 광주광역시 양림동에 있다. 정율성 생가와 가깝다. ⓒ 김재근

 
대표곡으로 <조선의용군 행진곡> <연안송> <팔로군 행진곡> 등이 있다. 연안송(延安頌)은 팔로군 행진곡보다 1년 전에 작곡했다. 모택동이 격찬했고 13억 중국인의 '아리랑'이라고 불릴 만큼 널리 사랑받았다. 항일 투쟁과 뛰어난 음악적 업적을 인정받아 조선인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3대 인민 음악가로 선정되었다. 우리나라 사람이 중국 정서에 맞는 노래를 만들었다니 참으로 대단하다.

광주광역시 양림동에 정율성 생가가 있다. 거주하는 곳이라 앞에 안내판만 세웠다. 정율성 기념 거리와 기념관도 있다. 매년 정율성 음악 축제가 열린다.

능주는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지석천변 영벽정에서 낚시하며 놀았다고 한다. 전남 화순 출신의 항일 혁명 음악가로 소개하기도 하는 이유다. ​화순군은 정율성을 회상하는 공간을 조성했다.

능주초등학교 후문으로 들어서면 정율성 흉상과 기념비와 그림이 있다. 마주 보이는 4층 건물 벽면에 커다랗게 초상화를 그렸다. 백 주년 기념관 2층엔 초등학교 시절을 재현한 교실이 있다. 운동장을 돌아 정문 쪽으로 가면 만날 수 있다.

학교 수업 중일 때만 볼 수 있다는 게 아쉬웠다. 한참을 서성이며 관리자에게 사정도 해 보았으나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평일에 시간을 언제 낼 수 있을까 모르겠다. 정율성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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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율성 고향집 정율성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집을 복원했다. 능주초등학교와 영벽정 사이에 있다. ⓒ 김재근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고향집은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다. 주차창 벽면엔 대형 벽화가 그려져 있다. 어릴 적 지석천변 영벽정에서 낚시를 하는 모습이다. 주차장에서 집까지 연결된 골목길 벽면도 그림이 있어 소소한 재미가 있다.

집에 도착하면 ㄱ자형과 ㅡ자형 두 채의 초가가 맞이한다. 복원했다는 고향집과 화장실이다. 아담한 장독대도 보인다. 마당 한쪽 서 있는 말 동상에 한참 동안 눈길이 머물렀다. 왜 이것이 여기에 있나, 아무리 고민해 봐도 그 연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집은 초가였지만 기둥도 도리도 보도 서까래도 단정했다. 초가에 저리도 반듯한 사각 기둥이라니, 기와집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집에 비해 전시된 물품은 너무 초라했다. 마루에 걸린 조그만 액자 하나만 기억에 남는다. 방에 축음기가 하나 더 있었던가.

출발은 광주광역시 양림동에 있는 정율성 거리였다. 동상을 보았고, 노래를 들었다. 사진을 보며 거닐었다. 가까이 있는 생가에도 들렀다. 자동차로 30분 남짓 걸리는, 능주초등학교와 영벽정과 고향집도 방문하였다. 그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추억이 널려 있을 능주를 거닐어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지석천변 영벽정에서 느끼는 콧바람도 나름 상큼하다.

정율성을 대하는 태도는 극과 극이다. 그는 의열단으로 활동한 독립투사였다. 하지만 북한은 연안파라는, 우리는 중국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모른 체 한다. 광주에서 나고 화순에서 자란 그를 잠시라도 기억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화순매일신문에도 실립니다. 네이버 블로그(cumpanis) "쿰파니스 맛담멋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쿰파니스 #맛담멋담 #정율성거리 #정율성고향집 #능주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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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파니스'는 함께 빵을 먹는다는 라틴어로 '반려(companion)'의 어원이다. 네이버 블로그(cumpanis) <쿰파니스 맛담멋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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