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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시간 근무 후 과로사... '주69시간'의 끔찍한 미래

[과로 산재 판례 찾아보니] 법원, '윤석열 정부 허용' 60시간 근무 후 과로사에 산재 인정

등록 2023.03.14 04:53수정 2023.03.14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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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4년 8월 27일 오전 7시, 환경미화원 정아무개씨(당시 60세)는 골목길에서 쓰러졌다. 인근 병원에 긴급하게 이송됐지만, 4시간여 뒤 사망 선고를 받았다.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혈관이 막혀 심장근육이 죽는 병).

고인의 아내 김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거부했다. 고인의 업무와 사인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다시 말해, 산업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후 법정 다툼이 벌어졌다. 그런데 서울행정법원 1심 재판부는 2017년 4월 유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근로복지공단은 항소했지만, 같은 해 10월 서울고등법원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바뀌지 않았다. 공단은 상고를 포기했고,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법원이 정씨의 죽음으로 산업재해로 인정한 가장 큰 이유는 고인이 1990년부터 24년 동안 평균 주 60시간 근무했다는 것이었다.

<오마이뉴스>는 '주 최대 52시간 제도' 도입 이전 과로에 따른 산업재해 판례 수십건을 살펴봤다. 윤석열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으로 주 최대 69시간 근무가 가능해지면, 과로에 따른 산업재해가 많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 부여, 4주 평균 64시간 이내 근로 등을 통해 건강권을 보호·강화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윤석열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에 따라 허용되는 근로시간을 이미 '과로'라고 판단하고 있다.

법원, 주 60시간 근무 후 과로사에 '산업재해' 인정

정씨 사건 판결은 법원이 과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보여준다. 법원은 과로를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과로 기준인 '4주 평균 64시간 초과 근무'에 국한하지 않는다.


정씨의 경우, 1990년 환경미화원 일을 시작한 이후 평균 주 60시간 일했다. 다만, 그는 사망 3주 전 15일의 정년 휴가를 다녀왔다. 이에 따라 정씨는 사망 직전 4주 동안 12일만 근무했고, 주 평균 근무시간은 30시간에 불과했다.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정씨가 오랫동안 주 평균 60시간 근무한 점을 강조하며 "만성 과로로 인한 피로가 더욱 누적됐다"면서 "1990년부터 누적되어 온 만성적인 피로가 휴가를 통해서 해소되었으리라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인용한 A의료원의 진료기록 감정촉탁 결과에는 관련 연구 결과가 담겼다.

"만약 원고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업무상 과로 및 스트레스가 망인의 발병 및 사망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 진행된 후향적 코호트 연구에서 만든 모델에 의하면, 10년 이상 일하였을 때, 주당 45시간 경우보다 주당 55시간 근무인 경우 심혈관질환의 상대 위험도가 1.16배, 주당 60시간 근무인 경우 1.35배 높은 것으로 보고했다."

A의료원은 또한 "장시간 근로와 건강 영향에 대해 현재까지의 증거를 놓고 볼 때 비교적 일관되게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것은 심혈관질환과 작업 관련 손상"이라면서 "24년간 매일 2~3시간의 연장근로와 매주 휴일근로를 상시적으로 지속하여 근로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을 초과하여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재판부는 "환경미화원으로서 수행한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심근경색을 유발하는 기저 질환을 자연 경과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시켜 결국 'ST분절 상승 유형의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할 수 있다"면서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주 60시간 근무도 상당한 신체적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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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한 구직자가 근무시간 등 각 업체의 고용 조건이 적힌 일자리 정보 게시판을 살피고 있다. ⓒ 연합뉴스

 
배관공 허아무개씨 사건에서도 법원은 윤석열 정부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에서 허용되는 주 60시간 근무를 산업재해의 원인인 과로로 판단했다.

허씨는 2016년 6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허혈성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허씨 쪽은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공단은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허씨는 다치기 전 4주 동안 주 평균 60~61시간 일했다.

2020년 7월 서울행정법원 1심 재판부는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판결문 내용이다.

"(허씨의 4주 동안 주 평균 근무시간은) 고용노동부 고시가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업무시간에 관한 기준으로 정한 '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에는 다소 미치지 못하지만, 상당한 신체적 부담을 발생케 할 수준에 이른다고 보이며, 원고가 수행한 업무가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였다는 점을 보태어 보면 더욱 그러하다."

재판부는 "과도한 육체적 부담이 인정되는 이상 적어도 업무상 요인이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 이 사건 상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켰을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라고 밝혔다. 공단은 항소하지 않았고,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노동단체 '직장갑질 119'는 12일 "정부의 개편안은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는 법이 아니라, 사용자가 원할 때 몰아서 노동자를 쓸 수 있는 '과로사 조장법'"이라면서 "주 52시간보다도 더 일을 시키기 위한 목적을 위해 '실노동시간 단축', '노사의 선택권', '노동자 건강권'과 같은 신성한 용어들을 감히 함부로 써대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 #주 69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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