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독당 중심 임시정부 비판하며 신한민주당 창당

[무강 문일민 평전] (18) 신한민주당 창당

등록 2023.03.17 13:41수정 2023.03.17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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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계기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연구와 선양이 활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역사의 그림자로 남은 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힌 인물들이 많습니다. 무강(武剛) 문일민(文一民:1894~1968)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평남도청 투탄 의거·이승만 탄핵 주도·프랑스 영사 암살 시도·중앙청 할복 의거 등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문일민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독립운동가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문일민이라는 또 한 명의 독립운동가를 기억하기 위해 <무강 문일민 평전>을 연재합니다.[[기자말]
문일민이 몸 담았던 조선민족혁명자통일동맹은 1945년 2월 7일 '신한민주당(新韓民主黨)'이 창당되면서 발전적 해소가 이뤄졌다. 문일민은 홍진·유동열·김붕준 등과 함께 창당의 산파 역할을 맡았다. 새롭게 탄생한 신한민주당(아래 신민당)에서 그는 중앙집행위원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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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민주당 책임 임원 명단(1945.2) 중앙집행위원 명단에 '문일민'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 ⓒ 독립기념관


신민당은 한국독립당 및 민족혁명당에서 탈당한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창당한 제3의 정당이었다. 신민당은 한독당 중심의 임시정부를 확대 개조하여 독립운동자들을 대표하는 전민족적 기구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목표를 갖고 출범했다.

신민당 의원들은 주로 여당인 한독당의 보수적인 노선에 동조하지 않는 한독당 소장파와 야당인 민혁당의 무기력함과 약산계의 독주 등에 불만을 품은 민혁당 내 비(非) 약산계들로 구성됐다.

신민당의 주요 구성원들이 걸어온 과거 노선에 비춰볼 때 이들은 외교노선보다 무장투쟁노선을 우선시했으며 '임정법통론'(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한민족을 대표하는 유일한 기구라는 주장)에도 사로잡혀 있지 않았다. 또 좌우합작 등 통일전선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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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민의 임시의정원 의원 이력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전시) ⓒ 김경준

 
"임시정부는 무능한 인사들에 의해 장악"

창당 직후인 1945년 3월 6일 신민당 주석단(홍진·유동열·김붕준)은 중국 국민당의 장제스 앞으로 충칭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에 대해 비난하는 서한을 보냈다.

그 내용을 보면 "마땅히 전체 민족운동의 영도 중심이 되어야 할 임시의정원이 전체 한국민족을 대표하지 못하고 충칭에 머물고 있는 몇몇 한교(韓僑)들에 의해 장악되고 있다", "혁명영도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대일전쟁에서의 공헌도도 극히 미약하다", "임시정부는 무능하고 식견 없는 소수 인사들에 의해 장악됐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임시정부는 없는 것만 못하고 민족혁명운동의 진행을 방해하는 장애물만 될 것"이라는 등 원색적 비난으로 가득하다.

이들은 임시정부와 한독당을 후원해오고 있던 국민당 정부에 임시정부의 실체를 고발하면서 자신들에 대한 후원과 격려를 촉구했던 것이다.

독립운동 진영의 분열상을 드러냄으로써 자칫 중국 측에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런 서한을 보내야만 했던 까닭이 뭘까.


"지난 1년여 간 임시정부는 광복군 확충, 국내외 민중의 조직, 해외독립운동 역량의 집중 등등 마땅히 진행해야 할 여러 공작 가운데 어느 한 방면에서도 철저한 계획을 세우지 못하였고 일을 추진할 결심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영도기관의 사정이 이러하니 한국독립운동이 전체적으로 정체상태를 면치 못하였던 것입니다.

(…중략
) 경각심을 가지고 발분하지 않으면 전체 동포들에게 큰 죄를 짓는 것이며, 우리의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한 중국 국민당과 중국 인민 및 동맹국의 기대를 저버릴 수도 있다는 인식이 한국독립운동자 사이에 팽배하였습니다." - <신한민주당 창당의 취지와 黨憲에 관한 代電>(1945.3.6)

요컨대 신민당은 기존 한독당 중심 임시정부가 이렇다 할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동포와 한국 독립운동을 후원하는 동맹국들의 기대를 꺾어놓게 될까 두려운 마음에 '대안세력'으로서 새 정당 창당을 선포하고 나섰던 것이다.

이들은 창당 직후 발표한 <성명서>에서도 "혁명 사업에 과거 25년 이상을 허비하였고 동시에 자기자신들을 가리켜 직업적 독립운동자라고 스스로 자랑하고 있는 충칭에 있는 우리 조선사람 영도자들이 우리 조국의 광복을 실현시키기 위하야 어떠한 구체적 계획을 하였으며 어떠한 구체적 노력을 하였는가?"라고 한독당 세력을 비판하면서 "임시정부 승인을 위하야 시간을 허비한 것 외에는 눈에 띄게 해놓은 성공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밖에는 우리는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성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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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민주당 총장(總章). 신한민주당의 당원 자격 및 규율 등을 정리한 문서이다. ⓒ 독립기념관

 
무장투쟁과 임시정부의 확대 개조 천명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5개 목표를 제시했다.

"첫째, 우리나라 안에 있는 대중 가운데 전체적 폭동과 유격전을 즉시 조직하고 착수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야 연합군과 협력하도록 할 것.

둘째, 각지에 흩어져 있는 무장력을 확대하고 공고하게 하야, 원수의 군사진영 내에 잇는 수백 만 동포들로 하여금 폭력으로 원수를 전복시키고, 강하고 큰 전투부대를 조직하게 하도록 활동할 것.

셋째, 어느 때나 또는 어느 곳에서든지 조선 사람은 누구나 물론하고 원수의 설비품들을 반드시 파괴하여야 하며, 원수의 정보를 얻어야 하며, 노동동맹파업을 단행하야 원수를 대항하야 비협력적 활동을 수행하지 않으면 아니된다는 것을 각 조선 사람에게 인식을 주도록 할 것.

넷째, 참상에 빠진 우리의 불쌍한 동포들을 위하야 구원운동을 즉시로 조직하며 동원시킬 것.

다섯째, 할 수 있는대로 빠른 기간 안에 또는 어떠한 적당한 장소에서 조선 국내 국외에 있는 모든 민주주의 영도자들을 초빙하야 독립운동자대표대회를 소집하고 모든 긴급한 문제들을 해결하며 동시에 적당한 시기에 우리의 주권을 다시 잡을 필요한 대책을 강구할 것."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무장투쟁' 계획과 '독립운동자대표대회' 소집이다.

먼저 무장투쟁 계획은 국내의 대중을 동원한 폭동과 유격전을 통해 폭력으로 원수를 전복시키겠다는 것으로 신민당이 적극적인 무장투쟁노선의 실천을 당면 과제로 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의열투쟁·독립전쟁 노선을 견지해온 문일민의 성향과도 부합되는 것이었다.

둘째, 독립운동자대표대회 소집은 각지의 독립운동 세력을 망라한 지도자 회의를 개최한 뒤 다른 독립운동 세력을 받아들임으로써 임시정부를 확대 개조하자는 것이었다.

신민당의 이러한 움직임은 1945년 2월 미국·영국·소련의 정상이 모여 전후(戰後) 피압박국가에 대한 정부 수립 구상을 논의한 '얄타회담'의 결과와 무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신민당은 <성명서>를 통해 "폴란드와 유고슬라비아에 관하야 역사적으로 중요한 대 크래미아 회의(얄타회담-인용자 주)가 결정한 것은 장차 해방될 모든 아시아 나라들에게도 일어날 것의 한 쓰라린 실례"라며 "오늘날 런던에 있는 폴란드 망명정부에 일어난 일이 중경에 있는 조선 임시정부에게 명일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할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우리들이 폴란드 망명 정부의 운명을 따르지 않기 위하야, 만일 우리들이 어떠한 구체적 성취를 하며, 어떠한 진정한 민주적 토대를 세우게 하려고 할 것 같으면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검토하지 않으면 아니될 것이다"라고 하여 얄타회담을 통해 드러난 연합국의 전후 구상에 발맞춰 한국 독립운동 진영 역시 전후 대책을 재정비해야 함을 역설한 바 있다.

<성명서>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얄타회담 당시 연합국은 런던에 있던 폴란드 망명정부를 고유의 정부로 인정하지 않고 루블린에 소재한 폴란드 인민해방위원회와 협의하여 자유 선거를 통해 신(新) 정부를 수립할 것이라는 전후 구상에 합의를 봤다. 

이와 같은 결정은 한국 독립운동 진영에 충칭 임시정부에 대한 국제적 승인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다는 불안감을 안겨줬다. 결국 현 상태의 임시정부로는 신(新) 정부 수립에 대비하는 것이 곤란하다고 판단한 신민당 세력은 모든 독립운동 세력을 망라하는 독립운동자대표대회를 추진하기로 당론을 세웠던 것이다.

- 19부에서 계속 -

[주요 참고문헌]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5·37, 국사편찬위원회, 2009
<자료한국독립운동>2, 연세대학교 출판부, 1972
김광재, <韓國光復軍의 한미합작훈련에 대한 임정 내부 및 각국의 반응>, 《史學硏究》 73, 한국사학회, 2004
류동연, <중경 임시정부 시기 신한민주당의 성립과 활동>, 《역사연구》 35, 역사학연구소, 2018
박순섭, <광복 직전 新韓民主黨의 臨時議政院 활동과 정국구상>, 《역사연구》 30, 역사학연구소, 2016
배경식, <'反韓獨黨勢力'의 重慶臨時政府改造運動과 解放後 過渡政權 樹立構想>, 성균관대 대학원 사학과 석사학위논문, 1996
#문일민 #무강문일민평전 #신한민주당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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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한국근대사 전공) / 취미로 전통활쏘기를 수련하고 있습니다.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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