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주 바와니 사원
Widerstand
작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네팔의 영토 자체는 남한의 1.5배 정도입니다. 인구도 3천만 수준으로, 결코 적다고 말할 수는 없죠. 하지만 지형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나 불리한 위치에 있음은 충분히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과 인도라는 대국 사이에 끼어 있고, 내륙국인데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니까요.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네팔은 네팔의 정체성을 가지고 국가를 유지했습니다. 유지만 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더 나은 국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현대사의 격동도 그 노력이 있었기에 남은 흔적이었습니다.
카트만두에 머무는 동안, 저는 굳이 관광지를 찾아다니지 않고 천천히 골목과 골목 사이를 걸었습니다. 박물관이 된 왕궁과, 관광지가 모여 있는 더르바르 광장 정도만 들러 보았습니다. 더르바르 광장에서는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일본인 관광객들을 우연히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고, 골목에서는 마음에 드는 카페에 앉아 한참이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곳의 골목에는 어디든 안심이 되는 풍경들 뿐입니다. 언급했듯 제게 카트만두의 첫인상은 화려하고 잘 정비된 도시였습니다. 떠나는 날까지 그 인상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골목 곳곳의 간판들이 눈에 익기 시작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죠.
떠나는 날,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학생들을 지나쳤습니다. 그들이 만들게 될 이 도시의 새로운 풍경을 생각했습니다. 더 나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꿈 위에, 여전히 남아 있을 격동의 흔적을 여전히 생각했습니다. 그때가 된다면, 정말로 화려해진 이 도시에 언젠가 돌아와 눈에 익은 간판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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