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하지 못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후회라니

친절하지 못했던 일과 친절을 받은 일을 돌아보며

등록 2023.03.29 08:48수정 2023.03.29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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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질문자는, 친절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후회된다고 했다. 시러큐스 대학교 문예 창작학과 교수 조지 손더스의 말이다. 우연히 이 문장을 접하고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생각지도 못해서.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후회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 후회되는 한 가지'라는 유명 명사들이 집합된 책에도 이토록 아름다운 형용사적인 후회는 없었다. '친절'이란 단어는 모든 후회를 아우르는 느낌을 준다.   
   
삶은 친절로 연결된다. 당신에게, 너에게, 누군가에게 친절할 수 있다면 삶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우리는 친절하지 못해 서로를 미워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친절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앞으로 남은 생에도 그 명제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조지 손더스의 '친절'은 그렇게 강력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나는 친절한 사람이 아니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누구에게도 친절하지 못했다. 여유가 없거나 귀찮아서, 혹은 너무 솔직해서.
      
얼마 전 농촌생활 현장활동가 교육을 받으면서 강사에 대한 설문지를 돌렸다. 강사 개개인이 아닌 여러 명에 대한 평가를 포괄적으로 묻는 설문지였다. 각기 다른 능력인데 묶음 평가는 불공정한 거 같아 나는 기타란에 특정강사 이름을 적어 보완할 것을 기록했다. 그리고 평균값을 내어 만족도 질문에 '보통'이라고 표시했다.

우연히 다른 동료 설문지를 봤는데 모두 '매우 만족'이었다. 그 동료는 강의 시간에 강의가 상황에 맞지 않다며 엉뚱한 질문을 하기도 했는데 칸칸마다 만족도 아닌 '매우 만족'을 표시하고 있었다. 내가 놀라서, "매우 만족이에요?"라고 묻자 으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 다음 날도 나는 설문지 기타란을 이용해 특정강사에 대한 평가를 따로 했다.
     
3일째 되는 날 내게만 설문지가 오지 않았다. 이유를 묻고 싶었으나 굳이 묻지 않았고 설문지를 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휴식 시간에 동료 A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바둑학원을 운영했던 사람. 초등2학년 손바닥 몇 대 때리고 아동학대로 신고되었다고 한다. 말을 너무 안 들어 손바닥 두어 대 때렸는데... 그렇게 됐다고 한다. 그 참에 학원을 접었다고 했다. 20년 이상 운영했던 학원을. 매우 친절하지 않은 사건이다.  

그런 A에게 내가 특정 강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자, A는 "좋게 생각해요. 멀리서 오신 분들인데"라며 "나도 강의를 갈 때가 있어요 먼 곳으로. 아침부터 준비해서 가면 하루 종일이죠." 아, 역지사지. 그제야 나는, 나의 솔직함이 상대방에게 친절하지 못했음을 간파했다.

내가 굳이 그렇게 시시콜콜 기록에 남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었다. 차라리 강사의 좋은 점을 기타에 적었다면 어땠을까. 내겐 교육담당자가 강조한 유연성이 없었다. 중요한 건 마음과 유연성이라고 교육받았음에도 공격본능을 드러냈다. 친절하지 못하게. 


좀 더 친절했으면 좋았을 텐데... 강의 시간에 대놓고 불친절한 나를 보면서 얼마나 신경이 쓰였을까. 나였으면 강단에 오르기도 전 벌벌 떨어 한 마디도 못할 거면서, 유창한 언어로 최선을 다하는 그들에게 무슨 불만이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내 안의 편견도 작용했다. 

'여기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을까' 개그맨 박성광이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고 논란이 된 평점. 이용철 평론가가 공개 사과를 했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지만 그 역할 내에서도 그는 친절하지 못한 발언을 했다. 감독이 개그맨이라는 편견에서 비롯된 발언. 그 지점이 논란이 다.

뒤늦은 사과를 했지만 상대방은 이미 내상을 입었다. 사실, 그 발언이 논란조차 되지 않았다면 그 또한 친절하지 못한 상황이다. 방관자는 불친절이다. 당사자가 아니어도 누군가 친절하게 나섰기 때문에 그에게 공식 사과를 받아낸 것이다. 문제가 없어서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게 아니라.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문제 제기를 하는 친절함이야말로 진정한 친절이라고 본다. 

옛 회사에서 시간당 천만 원짜리 강사라며 호들갑을 떨며 초빙했을 때도 나는 불친절했다. 우리 회사에 맞는 강의가 아니라 업종도 다른 회사 강의 폼 그대로, 그 예시로 강의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재밌다고 깔깔 됐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친절한 강사였다면 최소 예시라도 바꿨을 것이다. 자료를 바꾸지 못했다면 말이라도. 관객과 소통하면서. 지역에 와서 알지도 못하는 서울 지명을 예시로 설명하는 것은 매우 불친절하다. 일방적인 강의보다 관객이 참여하는 강의가 90% 기억에 남는다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설문지를 받지 못했을 때 깨달았다. 그들이 원하는 친절이 따로 있다는 것을.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만족도는 다음을 향할 수 있는 척도임을 기준했을 때 내가 조금 더 친절해야 했는지 모른다.

그들은 고액 강사가 아니다. 이제 막 강사를 시작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초보라는 편견에 나는 그들에게 과한 요구로 친절을 강요했다. 불친절하게도. 그런 점에서 기타란에 콕 찍어 작성했던 나도, 나만 쏙 빼고 설문지를 안 준 것도 모두 친절하지는 못하다.  
   
그런 내게 친절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이가 있다. 대학교 B사감. 무뚝뚝하지만 속이 깊다. 그 당시 나는 손가락이 아파 컴퓨터 업무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이전 직장을 그만둔 것도 손가락 때문이라, 비교적 컴업무가 적은 곳을 골라 지원했다.

그렇게 일하게 된 생활관 조교. 그런데 처음부터 '나, 손가락 아프니 일 못합니다'라고 할 수도 없었고 티를 내서도 안 됐다.  생활관이라 컴퓨터 업무가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입학 초기라 거대한 업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수천 명이 넘는 생활관 입사자 명단을 작성하는 기록.

다른 업무를 하면서도 내내 그 업무가 신경 쓰였다. 이러다 또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일이 생기면 어쩌지 계속 걱정되었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B사감이 말씀하셨다. "명부 업무 근로학생들한테 시켰어요, 매일 밤마다 하고 있으니까 1주일 내 될 거예요." 나는 그때 매우 감동을 받았다. 누가 신입직원을 생각해 준단 말인가. 이토록 친절하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B사감은 일하면서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한테 부탁했다고. 사생회장이 "그거 원래 조교가 하는 건데 왜 자기들이 하냐고" 묻길래 "조교가 처음이고 낯설어서 잘 모를 수 있어 그런 거니 학생들이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런 B사감을 어찌 마음에 저장하지 않을 수 있는가.
       
나도 그렇게 누군가에게 친절한 사람으로 기억되어 저장되기를 희망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앞으로 그렇게 기억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훗날 친절하지 못해 후회하는 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친절이 친절로 닿기를.

나의 삶 평생 주제어가 될 '친절'. '친절한 미경씨'가 되어 보련다. 진심으로.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 질문에 답을 찾는다면 누구라도 좀 더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후회 #매우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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