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KBS 드라마 김과장 속 한장면
KBS 드라마 김과장
우역곡절이 많았지만 두 번째 인증에 필요한 업무를 마쳤다. 진행 중 퇴사 결심도 여러 번이었지만 현실을 생각하며 꾹 참고 하루하루를 이겨냈다. 그렇게 하루를, 한 달을, 수개월을 지냈더니 결국 '피니시' 라인에 도착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끝내고 나니 앞으로 2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에 조금은 편안해졌다.
하지만 그런 편안한 마음도 한두 달을 못 갔다. 다녔던 회사에는 인증이 필요한 제품군이 하나가 아니었다.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인증 준비를 시작했다. 평가할 제품에 대한 문서를 준비하고, 평가할 기관을 만나서 미팅하고. 그렇게 다시 시작한 인증 업무는 결국 이직을 결정하게 된 결과를 가져왔다.
신입사원의 마음은 아니었다. 무조건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관련 업무를 해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회사의 시선이 다름을 알았다. 회사에서 본 나에 대한 기대감은 20년 경력과 그만큼의 급여였다. 새로운 업무여서 생긴 어려움은 내가 이겨내야 할 몫이었다. 20년 경력을 모두 인정한 급여의 가치는 '열심히'가 아닌 '잘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낯선 업무에 대한 빠른 적응과 숙련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의무였다. 20년 경력이면 즉시 새로운 업무 숙련자가 되긴 어려워도 회사에서 주는 눈치야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연차다.
그렇게 난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니 적응하기 싫어서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회사를 이직한 이유가 인증 업무에 대한 부적응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 부담감과 두려움이 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건 사실이다.
많은 직장인들은 동종업계 혹은 유사업계로 이직한다. 나도 큰 틀에서는 유사업계로 이직했다. 하지만 면밀히 따져보면 IT라는 직군에서는 유사하지만 과거해 오던 일과는 차이가 컸다. 하고 싶었던 분야의 일이라 큰 고민 없이 이직했지만 막상 입사를 하고 나니 걱정이 앞섰다.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다.
처음부터 난항이었다. 입사하고 받아 든 첫 난제는 제안서 작성 업무였다. 기술 컨설팅을 많이 했던 내게 문서 작성 업무는 낯설지 않았다. 게다가 그 까다롭다던 인증 업무를 할 때 적게는 수십 페이지부터 많게는 백 페이지가 넘는 문서를 쓴 적도 있다. 하지만 제안서 작업은 조금 달랐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문서 안에 단순히 제품이 아닌 회사 전체 노하우를 녹여 넣어야 했다. 그냥 쓰는 것도 어려운데 예쁘게 포장도 해야 하니 감각까지 있어야 하는 어려운 업무 영역이었다.
그래도 과거 많이 써오던 기술문서와 인증 업무 때 빅혔던 문서 스킬이 도움이 됐다. 제안서와 문서들이 시간이 지나며 차곡차곡 쌓여 갔다. 회사 소개서부터 제품 카탈로그 그리고 다양한 내외부문서까지 수개월 사이 새로운 업무에 충분히 잘 적응해 있었다.
요즘은 또 다른 종류의 업무를 맡았다. 바로 손절했던 인증 업무다. 과거와는 종류가 다르지만 당연히 평가를 위한 문서부터 외부시험 그리고 발표까지 흐름은 유사했다. 익숙함이 무서워진다는 의미를 알겠다.
시간이 지나니 과거에 했던 인증 업무보다는 수월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과거 퇴사를 결심할 정도로 거부했던 업무를 난 새롭게 받아들였다. 일 년에 가까운 시간을 여러 종류의 인증 업무를 진행했고 또 진행 중이다.
나를 바꾸는 건 조금은 쉽지 않을까
베테랑! 어떤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여 기술이 뛰어나거나 노련한 사람을 의미한다. 결국 오랜 시간 경험을 쌓아 온 일을 잘 하는 사람이다. 모든 분야 베테랑들도 그 시작이 있었을 것이다.
경험이 쌓이는 오랜 기간은 시간이 해결할 일이다. 모든 일을 처음부터 능수능란하게 할 수는 없다. 서툰 시작 후에 실수가 반복되고, 스킬을 익혀가며 시간이 지나면 숙련자가 탄생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툴더라도 시작하려는 마음이고, 두려움을 이겨내고 인내하는 과정이다.
처음 맡았던 일을 은퇴할 때까지 꾸준히 할 수 있다면 그 일은 천직일 것이다. 보통 이렇게 오랜 시간 숙련된 일을 하는 사람을 '장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주변 환경의 영향이나 빠른 시대의 흐름, 트렌드의 변화 등에 따라 직군, 직종이 사라지기도 생겨난다.
항상 모든 상황이나 환경에 맞춰 준비하기는 어렵지만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피하는 게 정답은 아니다. 오랜 기간 하던 방식을 고수하고, 하던 업무를 고집하도록 시대가 두질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혁명가'가 아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변하는 세상을 탓하긴 백세 시대라는 말로 각오를 다질 수밖에 없다.
늘 도전의 마음으로 새로운 업무의 숙련자가 되기 위해 서툰 시작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과정에서 실수도, 실패도 결국 성과의 발판이 될 것임을 알기에 오늘도 많은 사람이 경험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두려움을 이기고, 부담을 떨쳐내는 건 결국 큰 용기와 조금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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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사유였던 업무를 이직 후 다시 하게 되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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