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첫째에게 떠주신 가디건
최혜선
엄마가 만들어주신 옷을 본 지인들이 너는 엄마의 손재주를 닮았구나,라든가 금손의 대물림이라는 황송한 말을 했을 때 과연 그런 게 나에게 있었던 걸까? 이렇게 티 안나게 물려받는 재능도 다 있나? 의아했었다.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셨고 대학에서 배구선수를 하셨던 아빠를 닮아서 남들보다 언어를 익히는데 조금 더 거부감이 적었다거나, 운동신경이 좀 발달했다거나 살이 안 찌는 체형을 물려받았다는 건 내가 느낄 수 있는 대물림이었다면 바느질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무도 가르치려 하거나 배우려고 의도하지 않았는데 모계로 3대째 바느질이든 뜨개질이든 옷을 만들어 입는 결과가 나타났다. 바느질의 영역에서 내가 가진 거라고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변함없이 재미있다는 것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것을 과연 물려받은 재능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자고로 재능을 물려받았다는 말을 하려면 패턴만 봐도 옷이 어떤 모양으로 완성될지 머리에 떠오르거나, 패턴이 없어도 옷만 보면 비슷하게 옷을 만들어낼 수 있거나, 옷 한 벌을 만들어도 누가 봐도 만듦새가 남다른 그런 옷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여전히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연 나는 내 유전자를 이루는 A,C,G,T 단백질 어딘가에 바느질을 좋아하라고 써있는 생명체인 걸까? 옷을 집에서 만들어 입을 수 있다는 걸 자각하게 해준 환경이 남들과 달랐던 게 아닐까? 그러니까 이건 유전이라기보다는 환경이 아니었을까? 환경이냐, 유전이냐, 오랜 심리학의 갑론을박 연구 주제가 오늘도 내 안에서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다.
한 가지는 알겠다
3살 때부터 엄마가 만들어 준 옷을 입고 자란 고등학생 딸은 이제 "나도 나중에 크면 엄마처럼 옷 만들어 입을래요!"라고 말한다. "옷을 왜 만들어 입고 싶어?"라고 물으니 "내 마음에 딱 드는 스타일로 세상에 하나뿐인 옷을 만들어 입을 수 있으니까요"라고 아이는 답했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 정말 옷을 만들어 입는다고 해도, 그래서 결과적으로 4대째 옷을 만들어 입는 모계 라인이 완성된다고 해도 이 현상이 유전인지 환경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걸 알려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의 인생을 대상으로 인지, 성격, 지능 등을 검사하는 것처럼 변인을 통제해야 하는데 딸아이에게는 이미 나의 유전자와 우리집이라는 환경이 뒤섞여 버렸기 때문이다.
드라마 <환혼>에는 요괴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모계로만 이어지는 진요원이라는 소재가 등장한다. 우리 집안도 알고보니 옷을 만들어 입는 능력이 모계로만 이어지는 진요원의 바느질 버전인 건지, 그저 옷을 만들어 입어야 했던 혹은 옷을 만들어 입는 게 당연한 환경이 이 모든 궁금증의 원인인지 앞으로도 정확한 답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알겠다.
옷 만드는 일을 즐거워하고, 그 즐거움을 누리는 결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옷을 만들어 주면서, 받은 사람은 그 옷에 담긴 사랑을 잘 느끼면서 아껴주며 살면 그걸로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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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어서 시작한 일인데 대물림 되는 재주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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