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시아는 프랑스 Grenoble 대학에서 공부하는 의대생이다.
조계환
"안녕하세요, 저는 프랑스에서 온 알렉시아(Alexia)라고 합니다. Grenoble Alpes 대학에서 공부하는 5년차 의대생이고, 의학과 생물의학공학을 복수 전공하고 있어요. 병원에서도 일하고 있고요. 6년차 대학 생활을 앞두고 여행도 하고,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싶어 1년 동안 휴학 중이에요.
한국어는 7개월 전부터 혼자 공부하기 시작했어요(알렉시아는 간단한 대화가 가능할 만큼 꽤 한국어를 말할 수 있다). 한글은 쉽게 뗐는데, 한국어 문법은 유럽 언어와 많이 다르고 존댓말이 있어서 배우면서 스트레스 좀 받았어요.
한국어는 존댓말을 조금만 잘못 써도 굉장히 무례한 말이 될 수 있잖아요. 현지인들에게 무례하게 말하고 싶지 않아 존댓말을 올바르게 배우려고 굉장히 노력했죠. 그래도 한국말은 참 아름답게 들려서 배우는 게 좋았어요.
왜 한국을 선택했냐고요? 요즘 케이팝이나 케이드라마가 워낙 인기가 좋잖아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가고 싶어 하죠. 하지만 그래도 제가 한국에 여행가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물어본 질문은 "왜 일본이 아닌 한국인데?"였어요.
일본 요리라든지 망가 등 일본 문화는 이미 프랑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익숙한 문화니까요. 그에 비해 한국의 문화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만큼 더 새로운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사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저는 한국 음식을 먹어본 적도 없고,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본 편도 아니에요. 한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드라마 몇 편을 본 게 다죠. 케이팝은 그래도 많이 들었어요. 요즘 워낙 인기잖아요.
아,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우리 의대생들은 해부학 실습을 하잖아요.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2년차 때 해부학 실습을 하게 되는데, 선배들이 들어가서 가르쳐주고 도와주곤 해요.
저는 해부학 실습을 할 때 케이팝을 틀어놓곤 해요. 물론 시신을 존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심각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만들 필요는 없잖아요. 안 그래도 잔뜩 긴장한 신입생들은 중간에 기절하거나 쓰러져서 나가는 경우도 있는데, 밝은 케이팝 음악을 틀어놓고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면 한결 도움이 되더라고요.
저는 한국이 가진 이중적인 면에 흥미를 느꼈어요. 첨단기술이 굉장히 발달한 측면이 있고, 동시에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면이 있잖아요. 그런 점을 직접 가서 보고 탐험해보고 싶었어요. 한국 음식도 궁금했고요.
속초, 설악산, 대구, 안동, 경주, 부산 등을 여행하고 이곳 농장에 왔어요. 사실 농장에 머물기로 한 일정은 한국에 오기 8개월 전에 예약했을 만큼 일찌감치 결심한 일이었죠. 단순한 관광 이상의 의미 있는 여행을 하고 싶었어요.
한국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먹는지, 어떻게 사는지 진짜 모습을 보고 느끼고 싶었어요. 또 뭔가 실질적인 일을 하고 싶었고, 식물을 심고 흙을 만지고 싶었어요. 밭에서 바로 수확해 먹는 음식의 맛도 궁금했고요. 한국 음식을 어떻게 요리하는지 배우고 싶었어요.
그리고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그래서 환경적인 농사를 짓는 유기농 농장에 가고 싶었어요. 기후변화에 따른 농업 위기는 프랑스에서도 심각한 문제인데요. 농부들이 겪어야 하는 여러 가지 불평등한 일들이 많아요. 그런데 농업은 그야말로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한 문제이고, 음식이 없으면 우리는 살지 못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농업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복잡했던 생각이 단순해지고, 일하는 손끝에만 정신을 집중하면서 굉장한 행복감을 느꼈어요. 마치 명상을 하는 것처럼요. 바로 채취해서 먹는 산나물이나 신선한 유기농 채소로 만든 한국 요리도 맛있었어요. 먹으면 정말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한 번은 마을 사람들과 같이 못자리 내는 일을 했는데, 온 마을 사람이 모여 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함께 일하는 모습에서 예전 한국 사람들이 살던 모습을 엿볼 수 있어 좋았어요.
한편으로 한국 시골이 많이 보수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일하다가 참을 먹을 때 남자들만 따로 앉아서 술을 마시고, 여자들은 아이들과 함께 앉아 과일을 먹더군요. 참이나 밥을 먹은 뒤에 뒤치다꺼리는 다 여자들 몫이었고요. 하긴 프랑스 시골도 보수적인 문화가 있는 건 마찬가지긴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