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의 화초들베란다에 활짝 핀 제나륨과 수국이 예쁘다. 남편의 정성스런 돌봄에 화분의 꽃들은 잘 자라고 있다.
이숙자
남편은 아마도 지난 삶을 돌이켜 보며 '나도 꽃 같은 시절이 있었는데' 하며 회한에 젖는 것도 같다. 사람의 일생이란 참으로 사연도 많지만 그 가운데 환희도 있었고 고통 또한 함께 있지 않았겠나. 사람마다 살아온 행적은 다 다르다. 누가 남의 인생을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삶은 무두가 각자의 삶이며 숭고하다.
워낙 깔끔한 성격을 가진 남편은 꽃나무가 시들고 보기 싫으면 과감하게 뽑아내고 새로운 꽃나무를 들인다. 처음에는 나도 "아직 살릴 수 있는데 왜 뽑아 버려요?" 하고 한 소리했지만 소용없는 잔소리다. 꽃을 사들이고 가꾸는 일은 남편의 영역이다. 그래, 그런 취미와 자기만의 세계가 없으면 사는 게 무료하지 싶어 나는 그냥 둔다.
삶이란 사랑하는 대상이 없으면 너무 허망하다. 꽃에 관심을 같은 것은 메마른 가슴에 사랑의 씨앗을 심어놓고 물을 주는 일이다.
남편 나이 여든을 훌쩍 넘기고, 어느 날부터 가끔 만나던 친구와의 만남도 줄어들었다. 나이 든 친구들은 하나둘 세상과 이별을 하며 떠나고 있다. 친구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울적해 오는 것 같아 딸들은 되도록 가까운 사람들의 근황을 알리지 않는다. 누구나 한 번은 마주하는 일이지만 잠시라도 잊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도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게 모두의 마음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늘 우리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물음이다. 젊은 날도 아니고 나이가 많은 지금 남편은 새로운 미래를 꿈꾸지는 않는다. 그저 매일이 소중하고 아무 일없이 하루를 살아내는 일이다. 아프지 않고 사는 날까지 자식들에게 아빠로서 가족의 등대로 살다가 가시기를 바랄 것이다. 여태껏 그래 왔듯이.
요즈음 나는 남편 얼굴을 자주 바라본다. 언젠가는 그리움으로 남을 사람, 두 사람 중 누가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혼자 있게 된 날이 오면 어떤 마음일까. 그래서 그럴까. 남편 모습이 그렇게 애틋하고 마음이 저린다. 어떻게 반 세기를 넘게 같이 살아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놀랍다. 같이 살아온 그 수많은 날들이, 그저 고맙고 감사하고 그 마음뿐이다.
젊어서는 몰랐다. 남편에게 불편한 점만 보였다. 그러나 나이 든 지금 사람 마음을 바꿔 놓는다.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 남편은 내 삶의 등불이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냥 부부는 그렇게 사나 보다 하면서 깊이 생각하는 날이 많지 않았다. 올해는 한 살 더 먹고 나이조차 말하기 민망한 나이가 되면서 자꾸 생각이 많아졌다. 워낙 강단이 있으시고 자존감이 강하신 남편은 자기만의 세계가 분명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 의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생이란 어김없이 자기가 가야 할 길이 있다. 누가 뭐라 한들 소용이 없다. 어쩌면 그런 강한 결기가 있어 가정을 지켜낸 듯하다. 딸 넷과 마누라까지, 이젠 해야 할 일을 다 해낸 자유로운 몸, 나머지 삶은 본인을 위해서 살기를 권하고 싶다. 지금까지도 절약이 몸에 밴 사람, 베란다의 화초들만 사랑하시지 말고 본인을 더 사랑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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