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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풍요, 피웅덩이를 딛고 있는 현실", 이 말을 응원합니다

[기후범죄 집단을 법정에!⑨] 포스코 행사장서 시위 벌인 이상현 활동가를 응원하며

등록 2023.05.08 11:25수정 2023.05.08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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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활동가와 녹색당 활동가들은 2021년 10월 포스코 국제회의장에서 포스코를 비롯한 산업계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하는 연설을 했다는 이유로 150만원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상현 활동가는 포스코의 기후위기 책임을 고발한 직접행동에 대한 유죄 판결에 불복하여 벌금 납부를 거부하고 4월 18일~5월 2일 15일동안 노역을 수행했습니다. 이에 기후재판 시민불복종에 연대하는 사람들이 기후정의와 시민불복종·직접행동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합니다.[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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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활동가와 연대하는 녹색당 기후정의위원회 릴레이 직접행동. ⓒ 포스코 기후재판 시민불복종 연대모임

 
상현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녹색당 기후정의위원회 은강이에요. 편지가 많이 늦었습니다.

어제(4월 30일) 저녁부터 서울에는 비가 많이 오네요. 바람도 많이 불고, 4월 치곤 추운 날씨예요. 그곳은 어떤가요? 너무 춥진 않으실까 걱정이에요. 혹시 어디 아픈 곳은 없으세요? 저는 요며칠 기침으로 고생을 하다가 이제 조금 괜찮아졌어요.

2021년 10월 직접행동을 시작으로 포스코에 맞서 함께 싸워온 시간이 어느덧 1년 반이 훌쩍 넘었네요. 상현님, 영준님, 한사님, 청연님이 포스코 수소환원제철포럼 행사장에서 직접행동을 감행하고,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았던 일. 그리고 녹색당 기후재판 TF를 꾸려 함께 재판을 준비하던 시간들이 꼭 오래 전 일처럼 느껴져요.

1심에서 감형 판결을 받고, 상현님이 벌금에 불복하고 노역을 가겠다고 하셨을 때, 사실 동료로서 말리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동안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을 텐데, 노역까지 가면 상현님이 활동하는데 너무 지치지는 않을까. 2주가 짧은 시간은 아닌데, 상현님이라면 그 시간에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걱정과 염려가 많이 됐던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정의를 외치는 시민의 입을 틀어막는 권력에 끝까지 맞서겠다는 상현님의 강한 의지에 더는 아무 말씀 못드렸어요. 싸움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음 싸움을 준비하시는 상현님을 보며 저도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상현님과 함께 활동해오면서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저 사람은 저렇게 지치지 않고 싸울 수 있을까. 이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제가 처음 싸움을 시작했던 건 '부끄러움' 때문이었어요. 우연히 들른 헌 책방에서 밀양 송전탑을 다룬 다큐멘터리 사진집을 보게 됐고, 그 책 한 권이 제가 딛고 있던 땅을 완전히 흔들어 놨어요. 몸에 쇠사슬을 감고 투쟁하는 밀양 할머니들의 사진을 보며, 내가 매일같이 쓰는 전기가 이 분들의 피와 눈물을 타고 온 것이란 걸 그때 처음 깨달았어요. 괴롭고 부끄러운 마음에 녹색당 기후정의위원회 활동을 시작한 게 어느새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시간이 흘러 싸움을 시작했던 첫 마음은 점차 희미해지고 조금씩 무뎌지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정말 뜨거운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서 싸웠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나의 활동이 '일'처럼 여겨지고, 그저 관성대로 움직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그런 제게 상현님의 노역 결정은 관성에 젖은 제 싸움에 '댕~' 하고 경종을 울리는 것 같았어요. 아직 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법정에 서야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 '기후악당' 포스코와 '기후범죄 집단'이라고, 기후정의를 외친 활동가에게 벌금형을 부과하는 법제도로는 기후위기를 막아낼 수 없다고 상현님이 온몸으로 외쳐주신 덕분에 저도 어느 순간 제가 놓쳤던 질문들을 다시금 돌아보고 있어요.

상현님은 1심 마지막 공판 최후진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우리의 일상과 생활의 풍요가, 기업의 이윤과 국익이, 알지 못하는 이들이 흘린 피로 흥건한 웅덩이에 발딛고 있다는 현실을 참을 수가 없었다"라고요. 그러니 부디 역사의 방관자나 목격자가 아닌 함께 '행위자'가 돼 달라고요.

상현님의 그 '참을 수 없었던' 마음. 제가 느꼈던 그 '부끄러운' 마음.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 마음들이 모여 우리 사회가 덜 나빠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지난해 3만 명이 넘는 시민이 함께한 '924기후정의행진'과 지난 4월 14일 3000명의 시민들이 하루를 멈추고 함께했던 '414기후정의파업'에 모인 마음들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기어이 사회의 침묵을 깨고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그 마음에 있다고 저는 믿어요.

마지막으로 제가 얼마 전에 인상깊게 봤던 영화 한 편을 소개하고 이만 줄일까 해요. <이>라는 영화인데요. 사랑하는 이를 잃고 스스로를 망가뜨린 한 남성의 이야기에요. 초고도비만으로 집 밖으로 외출하지 못하고, 죽음을 목전에 둔 주인공이 영화 말미에 이렇게 절규해요. "내 인생에서 잘한 일이 하나라도 있단 걸 알아야겠어!" 어쩌면 이 한 문장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담겨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내 인생이 의미있기를 바라는 마음, 다른 사람의 처지를 모른 척할 수 없는 마음,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 폭주하는 사회에 브레이크를 당기는 그 마음들과 함께 오래 싸우고 싶어요.

홍은전 작가님은 본인이 바라는 세상은 고통이 사라지는 사회가 아니라 '싸우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 사회'라고 하셨어요. 그 말이 싸움을 멈출 수 없는 우리에게 참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싸우는 사람이 사라지지 않는 사회를 위해 우리 앞으로도 열심히 싸워봐요. 출소하시면 상현님이 좋아하는 대학로에 있는 엄청 매운 커리도 또 먹으러 가요.

2023년 4월 30일 함께 싸우고픈 은강.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녹색당 기후정의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은강 활동가가 작성했습니다.
#녹색당 #기후정의위원회 #기후재판 #밀양 송전탑 #기후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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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판 시민불복종 연대모임’(이하 연대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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