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4·3 평화기행 중 제주북부예비검속희생자위령비에서 해설사가 설명하고 있다.
화섬식품노조 제공
김태운씨는 이 설명을 들으며 "얼굴도 한 번 본적 없는 내 할아버지의 이름을 위령비에서 만나면 난 어땠을까?란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또 "수사님(해설사)이 눈물을 잠깐 삼키셨을 때... 그 사연을 전하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마음이 복잡했을까. 그분을 한 번 헤아려보고자 시를 쓰게 됐다"라고 전했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이 예비검속으로 처형됐다. 희생자는 3000여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부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제주4.3평화재단은 "경찰 공문에 따르면, 1950년 8월 17일 당시 제주도내 4개 경찰서에 예비검속된 자의 수는 1120명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7월 29일, 8월 4일, 8월 20일에 각각 서귀포, 제주항 앞 바다, 제주읍 비행장, 송악산 섯알오름 등지에서 집단적으로 수장되거나 총살·암매장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제주4.3평화재단은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2008년 10월 16일 설립된 공익적 목적의 법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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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예비검속 희생자와 그 후손 사연, 어느 시인이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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