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박스 표지베이비박스 표지
융
이 만화의 주인공 '클레르'는 프랑스 사람이다. 프랑스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한국인 부모님과 함께 살아간다. 부모님은 한국인일지라도 프랑스에서 먹고 나고 자랐으니 그녀는 한국인이라기보다는 프랑스인으로 부르는 게 옳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사정은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게 되면서 깨진다.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그녀는 입양아였던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자신을 키워준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아픔과 동시에 자신을 낳아준 '엄마'를 그리워하게 된다.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게 된다는 통설을 반영이라도 하듯 스토리가 조금은 저벅저벅 하다.
이 만화 역시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기에 앞선 전작과 내용적인 면에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앞선 작품이 솔직한 자전적 만화라면 이 작품은 픽션이 가미되었을 뿐이다.
만화가 특유의 '뿌리' 이미지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은 작가론의 측면에서 눈여겨볼 수 있으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반복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뿌리를 찾고자 긴 여행을 떠났던 '클레르'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면서 온전한 '나'로 성장한다는 맥락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일 수 있다.
다만 만화적 요소로 접근하면 다소 상투적인 이런 줄거리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다시 말해 이 만화에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만화적 연출인 '빨간색'이다. 클레르의 빨간 머리색, 클레르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찾아볼 수 있는 빨간색 음식, 클레르의 동생 윌리엄이 입고 다니는 빨간색 스코틀랜드 옷.
엄마가 성당에서 기도드릴 때 묵주에 매달려 있는 빨간색 십자가, 엄마가 좋아했던 개양귀비꽃, 입양서류가 담겨 있었던 빨간 별 박스, 손에 베인 빨간색 피, 고향인 한국에 방문해 이모 집에서 먹었던 온통 빨간색인 음식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