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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학생들의 9시간짜리 '오사카 체크인'

해외여행의 시작은 '공항 셀프체크인'부터

등록 2023.05.31 10:14수정 2023.06.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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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증의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대안학교의 특수교사로 11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발달장애 학생들이 자립과 취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 및 수업을 합니다. 캠핑, 농사, 라이딩, 메타버스 등 여러 가지 도전을 하다 드디어 해외 자유여행까지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미디어에 자주 비치는 중증의 장애인들과 또다른 발달장애인들을 보며 장애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에게 힘이 되길 바라며 글을 씁니다. [기자말]
발달장애 학생들과 함께 한 십여 년은 매해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었다. 해마다 다른 아이들을 만나고, 학생들의 특성에 따라 또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진짜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부족했던 것들을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해왔다.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계산 속에 호기롭게 시작한 해외 자유여행이지만 마침내 출발일이 되자 설렘과 긴장, 기대와 불안으로 마음이 들썩거렸다.


여행 중 새로운 배움1 : 인천공항 셀프 체크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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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서 셀프 체크인. 여행 중에도 공부는 계속된다. ⓒ 권유정


오전 7시 인천공항. 2시간 30분 정도 여유를 두고 집결을 공지했고 하나둘 들뜬 낯으로 모여들었다. 멀리 대전에서 혼자 공항버스를 타고 온 아이도 있었다. 새벽같이 준비하느라 피곤한 여정이었을 텐데 여행의 설렘과 홀로 공항까지 왔다는 뿌듯함으로 신나기만 한 모습이었다.

공항에 모이자마자 우리의 공부는 또 시작되었다. 첫 관문은 셀프 체크인. 요즘은 대부분의 항공사가 모바일이나 셀프 체크인을 요구하고, 카운터에서 체크인을 하려면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고 공지한다.

덕분에 지난해 제주도 여행을 갈 때는 전교생 백여 명의 체크인을 키오스크로 하느라 애를 먹었다. 심지어 키오스크는 한 예약번호로 9명씩 밖에 체크인이 되지 않아서 예약번호를 9명씩 나누어진 걸로 바꿔 발급받고 한 그룹씩 체크인을 해야 했다. 당시에는 갑작스럽게 추진된 데다 단체여행이어서 여력이 부족했지만 이번엔 자유여행을 위해 열심히 준비해 왔기에 셀프 체크인도 각자 도전해 보도록 했다.

일정을 계획하고 입국수속을 연습하며 수없이 되새긴 덕분인지 대부분 목적지와 시간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항공편까지 달달 외우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시간이 좀 걸렸으나 큰 어려움 없이 체크인을 완료하고, 수하물을 부쳤다.

학생들에게 준비물을 공지할 때는 혼자서도 챙길 수 있을 만큼 상세하게 안내한다. 보조가방에 넣어야 할 것과 부치는 짐에 넣어야 할 것을 나누고, 여벌 옷의 숫자와 빨래를 넣을 봉지까지 일일이 공지사항에 써준다. 애당초 짐을 잘 꾸려와야 정리도, 자기관리도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이 무선 고데기를 수하물에 넣는 바람에 비행편이 줄줄이 지연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준비물을 제대로 공지하지 않은 학교를 탓하는 댓글도, 부모가 챙겼어야 한다고 말하는 댓글도 있었다. 나는 콕 집어 누군가의 잘잘못을 논하기보다는, 현대 사회는 정보가 너무나도 방대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안내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내반입만 되는 품목, 위탁수하물만 되는 품목, 둘 다 안 되는 품목. 또 어떤 나라는 되고 어떤 나라는 안 되는 품목. 누군가에겐 상식이지만 누군가에겐 아닐 수 있으며, 알고 있어도 헷갈릴 수 있다. 교사로서 나는 최대한 세심한 안내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완벽할 수 없으며, 때로는 나도 안내자가 필요하다.

정보의 소외가 불이익이 되는 사회

여행을 준비하며 한결 스마트해진 세상을 만날 때마다 나는, 아무런 도움 없이 낯선 세상과 마주해야 할 누군가를 떠올린다. 그리고 나의 편리가 누군가에겐 불편을 넘어서 불이익이 되는 것을 종종 목도한다. 탑승 카운터에서 체크인을 하려면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는 것도 그랬고, 공항에서 로밍을 하는 것도 그랬다. 우리는 길을 잃거나 교사와 떨어지는 비상사태를 대비하여 학생들 모두에게 연락이 가능한 휴대폰을 준비하도록 안내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해외여행을 할 때 eSIM을 선호한다. eSIM은 로밍보다 저렴하면서 유심처럼 심을 교체하지 않아도 되고, 기존 심으로 오는 연락도 다 확인할 수 있어서 매우 편리하다. 하지만 사용 가능한 휴대폰 기종이 제한적이고, 설정 방법이 처음에는 조금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어 학생들에게 일괄 적용하기는 무리였다.

그래서 학생들은 대부분 쉽게 할 수 있는 통신사 로밍을 해왔고, 그중 한 명이 미처 준비를 하지 못해 인천공항에서 신청을 했다. 그런데 로밍 대기인원이 무려 43명이었다! 어플로 하면 5분이면 충분한 것을, 한참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 로밍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이 새삼 충격적이었다.

정보에서 소외되면 더 많은 돈과 더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나도 어느 분야에선가는 미처 몰라서 손해 보고 있는 것들이 있을 것이고, 발달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은 더욱더 그럴 것이다.

다소 씁쓸한 마음을 뒤로하고, 어쨌든 우리의 여행은 계속되었다. 무사히 간사이 공항에 도착했고, 미리 QR을 준비한 입국신고와 세관신고도 잘 통과했다. 일부 학생들이 QR코드가 잘 인식이 안 되고, 입력한 정보가 틀려 다시 수기로 신고서를 작성하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되기도 했으나 어찌어찌 모두 수속을 통과해 오사카에 도착했다.

여행 중 새로운 배움2 : 간사이공항에서 ATM 출금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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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이 공항의 라멘, 오사카에서의 폭풍같던 첫 끼. ⓒ 권유정


우리가 준비해 온 트래블월렛 카드는 ATM에서 수수료 없이 출금이 가능했는데, 수하물을 찾는 곳 바로 앞에 ATM 기기가 있었다. 첫 화면에서 International Card 버튼만 누르면 한국어로 기기 사용이 가능해서 한국 ATM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도 역시 비밀번호를 잊은 아이들이 있었으나 미리 메모장에 기록하고, 비밀번호 변경 방법도 숙지해 온 덕분에 한두 번의 실패 끝에 모두 10000엔씩 출금을 할 수 있었다. 카드 위주로 사용하고, 부족하면 또 출금을 할 계획이었다.

번거로워도 ATM 기기를 사용하고, 입출금, 계좌, 잔액 등 용어를 아는 것 역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는 필요한 교육이다. 평소 학교 생활 중에는 하기 어려운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그 또한 자유여행의 이유였다.

두 시간의 짧은 비행이었지만 입국수속과 환전까지 하고 나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지나 있었다. 공항 푸드코트에서의 첫 식사는 그야말로 폭풍 같았다. 우리나라의 푸드코트는 여러 가게의 주문을 한곳에서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간사이공항의 푸드코트는 제각각 가게에 가서 주문을 해야 했다. 북적북적한 인파를 뚫고 제각각 입맛이 다른 아이들의 희망에 따라 이쪽저쪽 흩어지고, 자리도 빈 곳을 찾아 두세 명씩 모여 앉아야 했다. 짐을 지키랴 주문과 계산을 도우랴 자리 잡는 걸 확인하랴.

식사를 끝내고도 공항에서의 일과는 끝나지 않았다. 이번엔 오사카 교통카드인 이코카 카드를 구입해야 했다. 처음 구입할 땐 카드값 500엔을 포함해 현금 2000엔이 필요하다는 사전 정보를 알고 갔기에 딱 맞춰 들고 공항 2층에서 한 명씩 이코카 카드를 구입했다.

"이 카드는 지하철을 탈 때 쓰는 거고, 우리는 수, 목요일에 사용할 거니까 잃어버리지 않게 잘 넣어놔."

산만하고 정리정돈을 잘 못하는 아이들은 소지품을 분실하는 일도 잦다. 자리에 앉을 때면 옷과 가방 정리, 자리에서 일어날 때면 소지품 챙기고 주변 정리, 평소에도 숨 쉬듯 하는 잔소리지만 행여 여행지에서 분실하면 몹시 골치 아프기에 각별하게 당부했다.

정리정돈은 습관이다. 인지나 다른 능력이 부족해도 매일 같이 반복해서 습관화하면 우리 아이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리고 정리정돈과 자기관리만 잘해도 스스로 삶을 살아가는 데에 큰 힘이 된다. 하지만 그렇게 당부했음에도, 분실로 인한 문제는 곧장 발생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는 리무진 버스를 타기로 하고, 티켓도 한국에서 미리 구입해 왔다. 문제는 일본의 리무진 버스는 상당히 아날로그식이라는 점이었는데, 종이 티켓에 탑승할 때 펀치를 뚫어주고 내릴 때 그 티켓을 회수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내릴 때가 되니 한 녀석이 티켓이 없단다. 짐 가방을 내리는 내내 보조가방과 주머니를 싹싹 뒤져도 티켓은 온데간데 없었다.

열심히 티켓을 찾았지만 없다는 것을 기사에게 어필했으나 기사는 친절한 낯으로 끈질기게 티켓을 요구했다. 이미 티켓을 확인받고 승차를 했으니 하차할 때 없는 건 크게 상관없을 거라고, 우리나라의 사고방식으로 안일하게 생각한 탓일지도 모른다. 결국 스미마셍을 연발하며 아무래도 티켓은 버스 안에 흘린 것 같다는, 기사가 이해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양해를 한참 구한 끝에 리무진은 잃어버린 티켓과 함께 떠나갔다.

자기 물건을 잘 챙겨야 함을 또 한 번 강조하고, 여행 앱을 열어 숙소로 가는 길을 찾았다. 미리 입력해 놓은 장소를 누르면 구글지도와 연결이 되는 게 트리플 앱의 좋은 점이다. 연습의 성과인지 아이들은 자신 있게 앞장섰다. 그리고 머지않아 성공적으로 숙소에 도착했다. 그렇게 인천공항에서 출발하여 장장 9시간 만에, 우리는 오사카 숙소에 체크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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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포잔에서 숙소 찾아가기 ⓒ 권유정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브런치(brunch.co.kr/@h-teacher)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자유여행 #일본 #오사카 #해외여행 #발달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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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증의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대안학교의 특수교사로 12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자립을 꿈꾸며 열심히 삶을 준비하는 발달장애인들을 보며 장애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에게 힘이 되길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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