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개인정보 유출 의혹과 관련 MBC 기자 임모씨를 수사 중인 경찰이 30일 상암동 MBC 사옥을 압수수색하기 위해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기자는 기록하는 사람입니다. 기자이기 전에 한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으며, 기록을 남깁니다.
저는 18년 차 기자입니다. 저에겐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는 엄마가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늦은 저녁 뉴스 화면을 통해 엄마 얼굴을 보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주로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을 오래 출입한 터라, 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때는 아이 친구들이 "아줌마, 경찰이에요? 검찰이에요?" 묻곤 했습니다.
아이는 엄마가 기자로 일하면서 자기 일을 좋아하고, 일 하는 걸 행복해한다고 느꼈는지,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가 경찰청에서 일한다, 검찰청에서 일한다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경찰청을 출입했었고, 검찰청도 출입했었으니, 아이의 시선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었지요.
기자생활 하면서 가장 보람되게 일했던 곳도 사회부였습니다.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이 정권의 눈치를 본다고 욕을 먹을 때도,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이 국민들께 비난받을 때도, 저는 검경 조직 내에 사명감을 갖고 일하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그분들을 믿고 응원하며 저는 제 자리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아이에겐 늘 바쁜 '기자' 엄마인 게 미안했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에 누군가는 해야 할 일들을 묵묵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저는 제 직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하마터면 아이에게 '못볼꼴'을 보여줄 뻔했습니다.
어제(30일) 오전, 서울청 반부패부 소속 경찰관들이 집으로 들이닥쳤습니다.
저는 지난해 9월 정치팀에서 대통령 해외 순방 발언 보도로 수사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 건으로 압수수색이 진행된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경찰관분께 물었습니다.
"요즘은 명예훼손혐의로도 주거지와 사무실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되나요?"
한참 지난 이야기를, 지금에 와서 주거지와 차량까지 압수수색한다는 게 좀 이해가 안 됐습니다. 그런데 수사관 얘기는, 이번에는 다른 건으로 왔다는 겁니다.
지난해 4월 한동훈 법무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 당시 인사검증자료를 A매체 기자에게 파일로 전송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가 인정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좀 구체적으로 내용을 설명해달라고 했더니 경찰은 알려줄 수 없다면서 저에게 대뜸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휴대전화부터 제출하시죠. 한동훈 장관님께서도 휴대전화 압수수색은 협조하셨습니다."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경찰이 영장집행을 나와서 기자에게 '한동훈 장관님'을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무엇보다 중립적이어야 할 수사기관이 마치 한동훈 장관님의 대변인 같은 발언을 하며, 휴대전화 압수수색에 협조를 하라니, 압수수색을 경찰에서 나온건지 검찰에서 나온건지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한 장관님께서 당시 휴대전화 제출 과정에서 검사와 몸싸움이 벌어져 독직폭행으로 문제 제기하지 않았던가요? 제 기억엔 끝까지 휴대전화 비밀번호는 알려주시지 않으신 걸로 아는데, 어떤 협조를 하셨다는 말씀인지?..."
경찰은 더 이상 한동훈 장관이 휴대전화 압수수색에 협조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